내년 수교 50주년 앞두고 갈등해소 위해 ‘물밑작업’
“국정원장직 여러 번 고사”양국 냉각기 더 길어질 수도
한일 간 가교역할을 자임해 온 이병기 주일대사가 국정원장에 발탁되면서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사직 수행기간이 지난해 5월부터 1년에 불과하지만 일본에서 보여줬던 그의 광폭 행보가 사라질 경우 긴밀한 대일 관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 때문에 부임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외교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외교분야 멘토’로 평가하고 있다. 9일 저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 관저에서 이례적으로 단독만찬을 가진 것에서도 이 대사의 존재감이 증명됐다는 평가다.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는 부임한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윤병세 외교 장관과 따로 만난 적이 없다.
일본측 관계자는 11일 “일본에서 이 대사의 외교상대는 외무차관이지만 사실상 장관급 이상으로 간주돼 왔다”며 “이 대사의 정치적 중량감과 한국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가는 상대였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사는 내년 한일수교 50주년을 앞두고 관계개선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유독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때문에 국정원장 제의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이 대사는 도호쿠 지진 피해지역을 비공개로 세 번이나 찾아가 주민들을 지원하는 등 일본 정부뿐 아니라 물밑에서도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다. 이 대사의 도호쿠 방문 이후 해당지역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이 대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사 왜곡과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우리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맞서면서 이 대사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일관계에 치명타였다. 이 대사는 10일 국정원장 지명 직후 도쿄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 말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만 없었더라면 한일 정상회담을 앞당겨 할 수 있었는데 물거품이 돼 아쉽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더구나 한일관계의 악재가 여전해 이 대사의 공백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당장 일본 정부는 22일까지 열리는 국회에 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이 또다시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이 대사의 후임으로는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이 유력한 가운데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 등도 거론된다. 이 대사는 15일 귀국,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예정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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