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구호조치 했다"
선장 등 혐의 부인에
유족들 "가족 영혼도 죽여"
"다 사형시켜야" 분노 폭발
격앙된 분위기에 휴정도
“시간이 흐르면 상처도 아문다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정지된 것과 같습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길까 생각하면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56일째인 10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법정. 이준석(68)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피해자 측 의견 진술을 하던 유족 대표 김병권씨의 목소리엔 물기가 어렸다. 더 이상 무너져 내릴 가슴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라”며 생때 같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들’과 법정에서 맞닥뜨린 순간, 유족들의 가슴은 또 다시 속절없이 무너졌다.
“공판조서에 기재할 수 있도록 피해자 의견 진술을 해달라”는 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의 말에 조용히 일어선 김씨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선원들이) 도망가는 순간에 (대피하라는) 안내만 한 번 했다면 우리 아이들과 승객들 대부분 살 수 있었다”며 “피고인들은 승객이 죽든 말든 상관 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이게 살인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그들은 승객만 죽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 영혼, 우리 사회 기본적인 신뢰까지 모두 죽였다”며 재판부에 철저한 진실 규명과 엄정한 처벌을 호소했다. 김씨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맺자 방청석 곳곳에서 ‘꺼억, 꺼억’ 하는 신음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유족을 대표한 김씨의 고통스런 심경 토로에 검찰의 기소 취지 진술이 이어졌다. 박재억 광주지검 강력부장 검사는 “아무 잘못 없는, 선내 대기 지시만 따른 착한 학생들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란 말을 남기며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고 갇히고 말았다”며 “엄중한 형을 선고받도록 하는 것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이준석 선장 등 4명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선원들의 변호를 맡은 국선 전담 변호인들의 변론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선원들은 아무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선장 등 선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변호인을 통해 “침몰 당시 가능한 구호조치 등을 했다. 잘못 이상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해 유족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날 경기 안산시와 전남 진도 등에서는 희생자, 실종자 가족 100여명이 내려와 2개의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 시작부터 유족들은 “다 사형시켜야 한다. 저 놈을 죽이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 법원 측은 법정 경위 9명을 배치해 대처했지만 유족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재판부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면 재판에 집중할 수 없다”며 10여 차례 퇴정 조치 경고와 재판 협조 요청을 하고 나서야 겨우 분위기가 진정됐다.
이날 두 차례 휴정됐던 재판은 변호인 변론이 길어지면서 오후 5시52분쯤 종료됐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유족들의 성난 가슴은 가라 앉지 않았다. 유족 30여명이 재판 종료 직후 법원 내 구치감 앞에서 이 선장 등 선원들을 향해 “잘못 없으면 떳떳하게 유족들 앞으로 나와라” “내 새끼 살려내라” 등 구호를 외치며 1시간 반동안 연좌 농성을 벌였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1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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