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 대통령ㆍ압바스 수반과 바티칸서 합동 기도회 열어
양 측 정치적 발언 자제, 평화 협상 돌파구 기대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진정한 용기를 보여달라”며 화해를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일 바티칸의 바티칸 정원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바르돌로뮤 1세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를 비롯한 유대교ㆍ가톨릭ㆍ이슬람교 신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동 평화 기원 합동기도회에서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어린이가 숨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순수한 죽음에 대한 기억이 평화적 대화와 공존을 위한 모든 작업에 인내와 용기를 불어 넣어줄 것”이라며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전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 당부에 참석자들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오른편에 앉은 페레스 대통령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고,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화답했다. 왼편에 자리 잡은 압바스 수반 역시 “교황의 초대는 용감했다”며 “중동은 물론 세계인들이 평화와 안정, 공존의 기쁨을 누리고, 우리 조국이 정당하고 총체적인 평화를 갖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회 후 교황은 두 지도자가 약속한 ‘평화의 다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를 정원에 심었다.
이번 행사는 지난 달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동 순방 중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양측 지도자를 공개 초청하면서 비롯됐다. 두 지도자는 교황 제의가 나오자마자 수락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협상을 중재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기도하는 것일 뿐”이라며 겉으로는 의미를 축소했으나, 진정한 평화의 계기가 되도록 세심하게 준비했다.
대표적인 게 행사일 선택.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예배일인 금요일(6일)과 이스라엘의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7일) 대신, 가톨릭교에서 교회 탄생과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부활절 뒤 7번째 일요일ㆍ8일)을 선택한 것. 세속 권력이 힘쓰지 못하는 바티칸 시국에서도 특히 중립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바티칸 정원을 행사장으로 정한 것도 두 종교를 고루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교황의 성의에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인 페레스 대통령과 압바스 수반도 기도회에서 정치적 언급을 자제했다. 페레스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유대인들의 활기찬 심장부’ 또는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의 요람’이라고 표현했고, 압바스도 바티칸이 사전 배포한 원고에 ‘점령’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평화, 존엄한 삶, 자유를 갈망한다”(압바스 수반), “국가는 국민에 대항해 칼을 들거나, 전쟁을 위해 훈련시키지 않을 것”(페레스 대통령)이라는 등 상대를 겨냥한 정치성 발언이 나오기는 했으나 수위는 높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황 주선으로 양측 지도자가 평화협상 중단(4월)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남에 따라 중동 평화에 돌파구에 대한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바티칸 관계자는 “기도회에 어떤 정치적 의제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평화협상이 실패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압바스를 고립시키려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훨씬 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두 지도자는 기도회 후 따로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티칸 전문기자 토마스 리즈는 “중동에서 상징적인 제스처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바티칸에서 비밀리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갈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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