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小史]
제140회 - 6월 둘째 주
1984년 6월 10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 비구니 1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산사에서 수행 중이던 전국의 비구니들이 이날 조계사 대웅전에 모인 이유는 임권택감독의 영화 ‘비구니’제작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비구니’는 후에 ‘거장 트리오’라 불리게 된 임권택감독과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 등 세 명이 처음으로 뭉쳐 칸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었다.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당대의 톱스타 김지미가 연기 인생 26년 만에 처음으로 삭발을 결심해 더 큰 화제가 됐다. 김지미와 조연배우 30여 명은 영화 촬영을 위해 그 해 4월 설악산 신흥사에서 단체 삭발을 감행했지만 시나리오 내용이 알려지면서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검사의 딸로 태어난 여인이 기생이 된 후 절에 들어가 해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던 영화는, 주인공이 출가 전 정사를 나누는 장면과 한국전쟁 때 아이들 피난을 위해 낯 모르는 트럭 운전사에게 몸을 맡기는 장면이 불교계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제작사는 “한 여성이 비구니가 되어 득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스님들을 욕되게 하는 일 없이 수준 높은 불교영화를 만들겠다”며 불교계를 설득했으나 종단과 비구니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공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낸 비구니들은 영화가 상영될 경우 극장 앞에서 농성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제작사를 압박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2억여 원을 쏟아 부은 영화사와 김지미씨등은 제작 의지를 꺾지 않았다. 실력행사에 들어간 비구니들은 6월 10일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비구니대표대회’에 참석해 단체혈서를 쓰며 철야 법회에 돌입했고 일부 스님들은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안국동 로터리에서 경찰과 대치 끝에 30여 명이 부상하는 사태에 이르자 영화사 측은 결국“사회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며 제작을 포기했다.
종교와 예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첫 충돌 사례로 꼽히기도 하지만 영화를 위해 여배우가 삭발한다는 것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임권택감독은 김지미씨의 삭발의지에도 불구하고 ‘비구니’제작이 수포로 돌아가자 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통해 강수연의 맨머리를 등장시켰다. 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배우로 군림했던 강수연은 이 영화에서 비구니 역을 맡아 과감하게 삭발을 단행해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임감독의 아쉬움도 풀린 셈이다.
이제는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배우도 망설임 없이 머리를 깎는 시대가 왔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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