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첫 女 감독 만수르
"일상 조명... 변화 이끌고 싶어"
작년 3월부터 여성에 자전거 허용
자전거 타기. 소녀의 꿈이다. 별게 다 꿈이라 여기겠지만 소녀에게는 이루기 힘든 소원이다. 소녀가 사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유난히 엄격하고 가혹한 율법이 존재하는 곳이다. 남자 눈에 띌까 여성은 옷과 히잡으로 몸과 머리를 감싸야 한다. 자전거 타기는커녕 외출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열 살 소녀 와즈다는 굴하지 않는다. 친구 남자애처럼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고 싶다. 하지만 자전거도, 자전거를 살 돈도 없다. 자전거가 있다 해도 그를 향한 억압의 눈초리가 높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다. 와즈다는 이슬람 사회가 만든 갖은 제약을 넘어 자전거 타기의 꿈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영화 ‘와즈다’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모든 장면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촬영된 최초의 장편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하이파 알 만수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감독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빼어나다. 유쾌하고 처연하며 희망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다가도 미소를 안고 극장을 떠나게 된다.
와즈다는 또래와 다르다. 획일적인 사회적 관념을 따르지 않는다. 복장부터 좀 튄다. 컨버스화를 신었고 팝송을 좋아한다. 뭐든 “하지마”로 일관하는 학교의 지시에 “왜?”로 곧잘 맞선다. 비밀스레 만나고 싶어 애를 태우는 두 남녀를 위해 쪽지를 전달하고 영악스럽게 용돈을 챙기기도 한다. 여자에겐 금지된 자전거를 사기 위해 코란 퀴즈대회에 나가 상금을 노리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기 위한 와즈다의 집념 어린 시도 위로 와즈다 집안의 우울한 사정이 포개지며 이슬람 사회의 현실을 실감나게 전한다. 와즈다의 아빠는 새로운 신부를 맞을 태세다.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엄마의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계를 돕기 위해 따로 일을 하는데 출퇴근이 만만치 않다. 돈을 주고 구한 운전사는 고객이라 할 엄마에게 윽박지르기 일쑤다. 생리 중인 여자는 맨손으로 코란을 만져서도 안 된다. 목소리가 크면 “여성의 목소리는 벗은 몸과 같다”는 타박이 따라온다. 문화의 차이를 아무리 감안해도 지나치다 싶은 억압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곳곳에 널려 있음을 영화는 와즈다와 와즈다 엄마를 렌즈 삼아 스크린에 투영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수난처럼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여성은 이슬람 율법상 가족 아닌 남성과 한 공간에서 대화할 수 없기에 만수르 감독은 차량에 숨어 스태프와 배우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제작진은 촬영 내내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협박과 위협을 받아야 했다.
고발성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인데 영화는 메시지 강박에 함몰되지 않는다. 낮은 목소리로 이슬람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실감나게 전하며 공감을 불러낸다. 영화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요소도 슬쩍 건드린다. 순교로 숭배되곤 하는 자살폭탄 공격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만수르 감독은 “지금까지의 중동 영화는 여성의 억압된 삶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며 “나는 사우디 여성의 실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변화의 시작점을 찾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독의 의도는 현실에서 통했다. 이 영화로 이슬람 여성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면서 율법이 수정됐고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지난해 3월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착하고 순한 영화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와즈다’는 보여준다. 19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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