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그노시아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 테드 창의 한 작품에는 ‘칼리그노시아’라는 가상의 테크놀로지가 등장한다. 뇌의 신경회로 하나를 차단해서 외모의 미추를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의학기술이란다. 예쁘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반응만을 없앨 뿐 얼굴 자체의 인식에는 하등 문제가 없으므로 일군의 사람들은 이를 통해 외모지상주의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칼리그노시아의 도움을 받는다면 범람하는 자극적 이미지들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외모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니 내면적 자질과 재능의 함양에 한층 집중할 수 있겠지. 겉모습 따위로 차별이 횡행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한층 더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 속에 칼리그노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대안학교가 설립된다. 이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정작 이 학교를 다닌 소녀는, 진짜 세상을 모른다는 결핍감에 늘 시달려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이 정말 하찮기만 한 건가, 미적 판단을 강제로 중지시키려는 것 역시 일종의 검열과 통제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제기된다. 나는 이쪽 생각에도 저쪽 생각에도 내내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그 사회의 일원이었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까. 공정하고 윤리적인 눈과 심미적인 눈의 거리에 대해,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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