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오늘 뜻 깊은 창간 기념일을 맞습니다. 1954년 6월9일 전쟁의 폐허에서 절망하던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신 새벽 첫 신문을 찍어낸 지 어언 60년입니다.
당시 장기영(張基榮) 창간사주는 ‘불편부당’ ‘정정당당’ ‘춘추필법’의 사시(社是)를 내걸고 ‘최초의 상업지’를 표방하며 전혀 새로운 젊은 신문 한국일보를 출범시켰습니다. ‘상업지’ 는 지금에선 자칫 오해할 옐로페이퍼의 뜻이 아니라, 정파지(紙)들만이 난무하던 혼탁한 언론문화 속에서 오직 국민과 독자만 바라보는 첫 신문을 만들겠다는 획기적 의미였습니다.
현대사의 숱한 질곡 속에서도 한국일보는 이 선구적 창간정신을 망각한 적이 없었음을 자부합니다. 물론 혹독한 시대상황과, 무한 이익추구의 시장변화에 쓸려 간간이 궤를 벗어난 적조차 없다곤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더라도 한국일보는 태생서부터 유전자처럼 각인된 불편부당의 정신 위에서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를 통해 단기간에 정상신문으로 도약, 한국 언론문화를 선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은 한국일보 60년 역사에서 가장 가혹한 시련기였습니다. 방만과 부실, 비리경영의 적폐가 누적되면서 선도적 위상이 훼손되고, 급기야 정론지로서의 존속위기에까지 몰렸습니다. 지난해 한국일보사태는 그런 상황을 더는 인내할 수 없었던 전체 기자, 임직원들의 순정한 자구노력이었습니다. 한국언론 초유의 그 지난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국민과 독자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일보는 언론사업에 대한 신념과 능력이 확고한 새 투자자를 영입, 새로운 60년의 역사를 힘차게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창간 60주년을 널리 알리는 뜻은 단순히 누적된 세월의 기념이 아닌, 한국일보의 재창간 의지를 선언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한국사회가 극심한 정파, 이념, 지역, 세대, 계층 갈등의 덫에 갇혀있고, 언론이 도리어 그 당사자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다들 익히 아는 바입니다. 이 틀을 깨기 위해 한국일보는 한국 유일의 중도 정론지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어떤 정파와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는, 오직 공정한 시각으로 바른 균형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갈등의 생산, 조장자가 아니라 조정, 통합자로서 국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향도 역할을 자임하겠습니다.
세월호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잘못된 보도문화를 바꾸는 데도 앞장설 것입니다. 조급한 경쟁과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된 지엽적 사안의 과장, 선정, 부실, 왜곡의 가능성을 줄이고 보다 큰 본질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사안을 다루는 진정한 책임언론의 전범을 세우겠습니다.
디지털 모바일 영역을 확대, 필요한 정보를 모두가 신속 정확하게 공유하고, 양질의 정보생산에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미래 미디어체계를 개발 구축하는 데도 진력하겠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모든 지향은 ‘신뢰의 소통’이라는 언론의 본래 존재가치에 더 충실하고자 함입니다.
앞으로 한국일보는 창간 이후 그래왔듯 끊임없는 시험과 혁신을 통해 언론문화를 바꾸고, 한국사회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선도언론의 모습을 다시 보여드릴 것입니다. 기대를 갖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동안 한국일보의 부활과정을 기꺼이 돕고 격려해주신 국민과 독자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장ㆍ편집인 이 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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