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KB금융 내분, 봉합이 능사 아니다

입력
2014.06.08 20:00
0 0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요즘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들이 전산시스템 교체 여부를 두고 내분을 겪고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를 통과한 전산시스템 교체 안건에 대해 은행장과 감사가 갑자기 반대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이 차기 시스템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보고서를 이사회에 제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게 발단이었다. 전산시스템 교체 건은 이미 이사회를 통과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감사보고서 채택을 재차 요구하던 은행장은 결국 감독당국에 특별검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집안 싸움의 시비를 가려달라고 온 동네에 알린 셈이다.

전산시스템의 교체는 수천억 원의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수많은 고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사안이다.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다툼이 격화돼 외부로 표출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각은 곱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폭발 수준이다. 여론과 전문가들은 연일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이 거론되기도 하며 나아가 금융지주회사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KB금융 내분사태에 대한 호된 질책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KB금융그룹은 금융 사건·사고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문제가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9월의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사건 및 비자금 조성 의혹, 11월 국민주택채권 위조 및 횡령 사고, 12월 대출이자 환급액 허위 보고 등의 사고가 잇달았다. 올해 들어서도 1월 KB국민카드와 국민은행의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졌다. 2월에는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BCC은행에 대한 투자가 6년 만에 9,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4월에는 국민은행 팀장이 9,700억원 규모의 허위 확인서를 발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처럼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KB금융을 바라보며 끓어오르던 분노가 최근의 내분 사태에 이르러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이번 사태가 지난 4월 KB금융그룹의 자체 쇄신안이 발표된 이후 불거졌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와 이로 인한 경영진 간 갈등이 금융사고를 부추겼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비리가 의심되는 직원이 계파를 바꿔 줄대기를 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진 간의 갈등에 따라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견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갈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의견의 건전한 대립은 조직을 발전시킨다. 심각한 대립과 갈등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갈등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양쪽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번 내분사태는 KB금융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수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영진 간의 갈등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거꾸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이래야 확실한 해부와 수술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검사하는 금융감독원의 입장이 어정쩡해 보인다. 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 양쪽 모두를 문제 삼는다고 전해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두 학생이 싸웠을 때 선생님 입장에서는 둘 다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외부에 드러날 정도로 다툰 것 자체가 문제이니 양쪽을 징계하고 봉합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선생님이 아니다. 오히려 심판에 가깝다. 선수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면 이를 봉합하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의 잘못인지를 명확히 가리고 필요한 징계를 하는 게 심판의 임무다.

전산시스템의 교체는 중요한 사안이다. 부적절한 절차를 거쳐 전산시스템 교체를 결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반대로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에 문제가 없는 데도 감사보고서 왜곡 등을 통해 발목잡기를 시도했다면 이 역시 중대한 문제다.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검증 없이 양비론으로 때우려 한다면 이는 직무유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