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TV 시청률 줄어 아이돌 스타 내세워 10대 공략
중장년층 아이돌 소비도 한몫
tvN이 로맨틱 코미디 ‘마녀의 연애’의 후속으로 16일부터 방송하는 드라마의 제목은 ‘고교처세왕’이다. 고교생과 처세술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이 드라마의 미묘한 내용을 상징한다.
SBS의 ‘상속자들’이 지난해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사실을 떠올리면 10대 고교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2009년 KBS ‘꽃보다 남자’도 30%가 넘는 시청률로 그 해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두 드라마 모두 재벌가 이야기나 삼각관계 등 성인의 시선을 끌만 한 소재를 다룬데다 평일 밤 미니시리즈로 편성됐으니 고교생들이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10대를 위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고교처세왕’은 18세 고교생 이민석(서인국)이 형을 대신해 대기업 간부로 입사한 뒤 경험하는 에피소드를 주로 다룬다. 학교와 회사를 넘나들며 10대부터 중ㆍ장년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려는 소재로 보인다. 방송 시간도 밤 11시다. 그러니 아예 청소년 드라마를 표방한 KBS ‘학교’ 시리즈나 MBC ‘나’, ‘사춘기’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청소년 세계를 다루든, 성인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을 다루든 고교생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꾸준히 방송되는데 청춘 드라마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안방극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MBC ‘우리들의 천국’(1990), KBS ‘내일은 사랑’(1992), KBS ‘사랑의 인사’(1994), MBC ‘남자 셋 여자 셋’ (1999), KBS ‘광끼’(1999) 등은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고뇌와 열정을 담아낸 1990년대의 드라마들이다. 장동건, 이병헌, 배용준, 송승헌, 고소영, 원빈 등이 이들 드라마를 통해 청춘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청춘스타라는 말도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청춘 드라마가 방송가에서 각광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20대의 TV 시청률이 떨어지는 마당에 방송사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1990년대의 20대는 문화 생활의 하나로 TV를 시청했지만 지금의 20대는 TV를 볼 겨를조차 없는 것 같다”며 “그래서 드라마가 아이돌 스타 등을 내세워 10대를 공략하거나 TV 주시청층인 40대 이상 중·장년층을 노리며 그들이 볼만한 내용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상업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생각보다 두터운 팬덤 문화가 아이돌 스타를 내세운 학원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며 “10대뿐 아니라 30, 40대 중년층도 아이돌 스타에 대한 소비가 일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시장이 커진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꽃보다 남자’나 ‘상속자들’에는 이민호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출신 김현중(SS501), 김준(티맥스), 박형식(제국의 아이들), 크리스탈(에프엑스) 등이 출연해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들은 드라마에서 고교생 특유의 학업 스트레스나 사춘기 등의 고민을 보여주기보다 재벌가의 상속문제, 이성간의 사랑, 기성세대와의 관계 등 성인 못지 않은 심각한 고뇌를 연기했다.
윤 교수는 “1990년대는 미래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청춘의 낭만도 살아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낭만조차 소멸한 시대로,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시대상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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