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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하는 젊은층, 오바마케어 연착륙 이끈다

입력
2014.06.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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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의료개혁 시동

일반인 의료보험 민간에 맡긴 탓

미국경제서 의료비 비중 무려 17%

혜택은 선진국 중 꼴찌에 가까워

"국가 경쟁력 상실" 여론 속

오바마 정부 2010년 첫 도입

시행 후에도 정치적 고비

국가 최소한 개입 등 한계 크고

공화당, 의회 폐기 꾸준히 시도

올 중간선거서도 이슈화 가능성

속속 나타나는 긍정적 성과

의료비용 증가세 60년 만에 최저

가입 신청자 800만명 돌파도

300여만명 혜택 입은 청년층 등

"호응 분위기 점차 확산" 평가

미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미국적인 경험은 병원에 가야 할 지 고민할 때다. 이웃한 캐나다만 해도 제너럴모터스(GM) 법인 사장 아들이나, 이민 온 아이티 실직자의 딸이 다치면 모두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캐나다에서 당연한 이런 모습이 미국에서는 사장 아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 고가의 의료보험에 가입한 부자는 전문의 치료를 받고 20~30달러만 내면 된다. 그러나 보통의 많은 미국인들은 보험이 있다 해도 원하는 진료를 받으려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할 지, 참아야 할 지부터 고민하는 이유다.

보험이 없는 사람의 고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경우 처음에는 1,000달러 가량의 청구서, 그 다음에는 의사 진찰을 받을 때마다 100달러 넘는 진료비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하기 때문에 보험에 들지 못하는 무보험자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다가 병을 키운 다음에야 응급실을 찾는다. 응급실에선 치료가 우선이고, 의료비용은 나중에 갚으면 된다. 그러나 많은 민간 병원들이 돈 없는 환자들이 몰리는 응급실을 아예 없애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는 게 미국 의료계의 현실이다.

이런 후진적인 의료시장 문제를 일부나마 해결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된 제도가 건강보험개혁법, 이른바 ‘오바마 케어’다. 법이 만들어질 당시 미국인 가운데 약 5,000만명, 전국민 예닐곱 중 1명이 의료보험 혜택 없이 지냈다.

오바마 케어 태어나기까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앞서 4명의 대통령들이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려 했다. 그러나 1935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책은 의사협회 반대로, 1970년대에는 경기침체와 역시 의료계의 반대로, 1992년 빌 클린턴 정부 때는 의사, 보험사, 제약사, 자영업체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성공한 것은 노인과 저소득층, 재향군인 대상의 의료보험뿐이었다.

미국과 달리 영국은 사회주의 방식의 전국민 의료서비스 제도를 실행 중이다. 의료진이 정부가 보유한 병원에서 봉급을 받는 방식이다. 절반의 사회주의로 불리는 캐나다의 의료보험은 각 지방정부가 민간 병원과 의사에게 돈을 지불토록 했다. 스위스는 정부가 모든 보험사들이 모든 국민에게 고정된 비용으로 보험서비스를 하도록 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사익 추구를 제한하는 대신 부자들이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은 허용했다. 이런 제도들이 미국보다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곳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일반인 의료보험을 민간에 맡기면서 2009년 전체 경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7.6%나 됐다. 2040년에는 무려 34%까지 상승,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개인당 의료보험료 부담은 2000년 2,196달러에서 2009년 4,824달러에 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비 지출이지만 국민의 의료 혜택은 선진국 중 꼴찌에 가깝다. 의료 혜택이 제한되면서 미국민의 기대여명과 영아사망률 성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그 여파가 의료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은 물론 기업체들마저 과다한 의료 관련 비용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 병원 신세를 진 뒤 고가의 병원비를 감당 못해 파산하는 사람이 한때 연 200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의료비 상승은 또한 고용주들이 임금을 올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기업 파산이나 노사 분규의 최대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으로 내몰렸던 제너럴모터스(GM)가 당시 판매하던 자동차 한 대에 포함시킨 직원 의료비는 일본 도요타(97달러)의 15배가 넘는 1,525달러에 달했다. 오바마 정부는 의료비 문제가 미국 경쟁력 상실의 원인이란 여론까지 업고 의료 개혁의 출발인 오바마 케어 입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곡절 많은 시행과 정치 전쟁

2010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해 시행된 오바마 케어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 의료비 부담 축소, 효율적인 의료서비스의 3가지에 방향이 맞춰져 있다. 주된 취지는 무보험자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인과 기업의 보험구입 의무화, 성인자녀의 부모 의료보험 적용, 건강보험거래소 운영, 보험사 영업 관행 개선, 예방서비스 무료화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오바마 케어 역시 의료보험을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부문에 맡기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더구나 이 법은 병원 비용 통제에 최소한만 개입할 수 있도록 해 고가의 의료비용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민간보험사들이 판매하는 보험상품이 자신들과 연계된 의사와 병원에서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때문에 오바마 케어 도입 이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1인당 의료비에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두 배를 지출해야 한다.

이 법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개인과 5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에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상품을 구입하도록 하고 위반시 벌금을 부과한 것을 문제 삼았다. 보수적인 26개 주가 이 같은 규정이 주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벌금이 연방정부 권한인 조세권에 해당된다며 오바마 케어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오바마 케어에 대한 법률적 허가가 내려진 셈이지만 그렇다고 법 시행의 제동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보수 진영은 오바마 케어의 위헌성이 아니라 법 자체를 의회에서 폐기하는 대안을 제시하며 2012년 대선에서 최대 이슈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 첫날 오바마 케어를 폐기할 것이라고 호언하던 공화당 대선 후보 밋 롬니가 패배하면서 오바마 케어는 또 한번의 고비를 벗어났다.

공화당 중간선거에서 다시 폐기 카드

하지만 이번에도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가 찍힌 것은 아니다. 물론 민주당은 오바마 케어에 대한 국민 심판의 의미가 포함된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된 만큼 논란은 끝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전국위원회가 오바마 케어를 비난할 소재를 공개 모집하는 등 공화당은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다시 카드로 활용할 움직임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확보가 거의 확실한 공화당은 상원마저 다수당을 차지하면 오바마 케어의 폐기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지금까지 50차례나 오바마 케어 폐기 법안이 가결됐으나 그때마다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이 이를 부결시키거나 표결절차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화당이 이처럼 법안 통과 4년이 넘은 오바마 케어를 선거 때마다 이슈로 삼는 것은 공화당에 유리한 여론 흐름과 맞물려 있다. 오바마 케어에 대한 여론은 거의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찬성보다는 반대 의견이 많다. 반대와 찬성의 차이는 2012년 대선 전 6%포인트로 좁혀졌으나 이후에는 다시 확대되고 있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최근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를 가중 평균한 결과도 반대가 찬성보다 10%포인트 가량 더 높았다.

반대 여론이 비등한 것은 오바마 케어로 당장 개인이나 기업, 정부의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석유재벌 코크 형제가 돈을 댄 한 정치광고가 오바마 케어 이후 보험금 부담이 늘어난 미시간주의 중산층 주부를 등장시켜 오바마 정부를 힐난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초당파 기관인 미 의회예산국(CBO)은 오바마 케어로 향후 4년 내 정규직 일자리가 200만개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 여론이 부담스런 민주당 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되도록 오바마 케어,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연초에는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오바마 케어의 책임을 인정할지 묻는 질문에 답변을 못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젊은층 오바마 케어에 좋은 평가

그러나 최근 들어 오바마 케어의 성과가 나타나고 특히 젊은층의 호응이 높아지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오바마 케어 시행 이후 건강보험을 가진 미국인 비율이 높아졌고, 의료비용 증가는 반세기 동안 가장 낮아졌다. 미국 중산층과 국가재정 모두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시작된 오바마 케어 가입 신청자가 800만명을 넘어선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또한 26세 젊은이까지 부모의 의료보험에 포함시키면서 지난 4년 간 300만명 이상의 청년층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고, 1억명 이상이 X선 암검진이나 피임 등 예방진료 혜택을 받게 됐다. 또 메디케이드(빈민층 의료보험) 대상이 개인소득 1만4,400달러에서 2만9,300달러로 기준선이 올라가면서 수백만명이 추가로 보험 수혜를 보게 것도 분위기를 바꾸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 케어 이전 5,000만명으로 추산되던 무보험자들은 4,000만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의회예산국은 2019년에는 의료보험 없는 사람이 2,300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콜로라도주의 한 여성은 태어나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고는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 “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다”며 “백악관에서도 내가 안도하는 한숨을 들었을 것”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공화당 한편에서도 오바마 케어가 거의 정착단계로 접어들어, 공화당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폐기하려 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 케어를 폐지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지금은 이민개혁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공화당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미 수백만명이 가입해 본격 시행에 들어간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 정치ㆍ경제적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바마도 미국이 오바마 케어의 정치 전쟁으로 되돌아간다면 미국이 분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남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지역에선 여전히 반오바마 케어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고 공화당 지도부도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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