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고 있다. 개시해야 할 우산이 있기 때문이다. 가방에서 모르는 우산이 나온 건 약 한 달 전이었다. 그 전날 늦은 술자리가 파하면서 생각 없이 챙긴 모양이었다. 펴보았다. 앙증맞은 사이즈에 살은 튼튼했고 새것에 가까웠다. 잃어버린 사람이 속상해 할 것 같아 휴대전화로 찍은 다음 함께 있었던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거 누구 건가요? ㅋㅋ, ^^;; 하는 답들이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 트위터에도 우산 임자를 찾는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때 뒤늦은 답문자가 도착했다. “그 녀석, 어제 네 앞을 떠날 줄 모르던데-.-?” 문자와 우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녀석이라. 그 단어가 우산을 가리키니 왜 갑자기 없던 친근감과 욕심이 뭉게뭉게 솟아나던지. 그날 나는 트위터 멘션창을 자주 확인했는데,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린다기보다는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딱히 훔친 것도 아닌데 조마조마했고, 잃어버린 사람보다 돌려줘야 하는 내가 더 억울할 것 같았으며, 책상 위에 두고 눈독을 들이는 사이 애착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런데 시일이 이렇게 어지간히 흘러 이젠 ‘이 녀석’을 내 것으로 삼아도 상관없겠다는 마음을 굳혀가던 엊그제, 드디어 주인이 나타났다. “그냥 가지세요^^”라는 흔쾌한 메시지였건만 이 서운함은 또 뭘까. 어쨌건 펼쳐 쓰고 빗속을 일단 걸어야 진짜 새 주인이 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비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우산을 위한 비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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