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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막아내던' 홍명보 감독에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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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막아내던' 홍명보 감독에 띄우는 편지

입력
2014.06.0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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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전(한국시간) 전지훈련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 축구장에서 막바지 전술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에서 모든 훈련을 마무리한 대표팀은 오는 10일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가나와 평가전을 치른 뒤 브라질에 입성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전(한국시간) 전지훈련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 축구장에서 막바지 전술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에서 모든 훈련을 마무리한 대표팀은 오는 10일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가나와 평가전을 치른 뒤 브라질에 입성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어두운 시대, 항상 축구는 열망이요 희망이었습니다

어수선한 지금 '덮어놓고 애국'보다 차분함이 더 필요하죠

소리 작다고 오해 마십시오…가슴 벅찬 응원 하겠습니다"

홍명보 감독님, 안녕하신지요. 축구평론을 하는 정윤수입니다. 언젠가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 정도 한국 축구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지요. 감독님은 과묵했지만 설명과 강조가 필요한 대목에서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지요. 그때마다 비행기마저 감독님 말의 무게에 놀라 조금 흔들리는 듯 했습니다.

지금쯤 감독님께서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선수들과 함께 마지막 훈련을 하고 계시겠죠. 아마 이 편지를 읽을 겨를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신을 통해 이번 월드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히 세월호 이후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1백여 년의 역사입니다. 구한말 영국 선원들과 성공회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된 축구가 일제 치하에서는 주권을 염원하는 대도시 시민들의 열망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신생독립국가의 희망이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가혹하고도 길었던 독재 시기에 축구는 그나마 한시름 덜 수 있는 간절한 90분이었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새롭게 태어난 젊은 세대의 다양한 감수성이 분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2002 월드컵 때 세계가 우리를 주목한 핵심은 바로 이런 점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정치 민주화, 경제 발전, 문화 다양성, 3가지 요소가 새로운 21세기를 예고했으며 그 광휘로운 미래를 집단적으로 예감했던 것이 2002 광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이후 우리 사회는 숱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소득, 지역, 이념, 세대 등에 따라 갈등의 골짜기가 깊이 패였고 젊은 세대의 앞날은 끝 모를 터널처럼 어둡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까지 터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며 모두들 비통한 죽음 앞에 눈물 짓는 조문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개조를 운운합니다만 정작 개혁되어야 할 적폐의 대상들이 매일같이 인간적 비애감마저 들게 하는 교언과 쓴웃음을 자아내는 영색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축구 역시 2002년 이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70년대 박정희 유신 통치는 스포츠 국가주의로 일종의 국민 감정 동원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대한건아’ ‘태극마크’ ‘국위선양’이 스포츠의 유일무이한 목표였지요. 몇몇 선수들이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많은 선수들은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폭력과 비리의 구조에 억눌려 지내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어느 원로 감독님이 선수 구타 때문에 퇴진했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공을 차는 게 아니라 가족의 헌신과 개인의 희생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여전합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8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고 ‘4강 신화’와 더불어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는 사상 첫 원정 16강도 이뤘습니다. 홍명보 감독님은 이 모든 결정적 순간에 거의 참여하였고, 런던올림픽 4강과 더불어 이제는 브라질의 신화를 쓰기 직전입니다. 이 창대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의 시스템은 허약하고 상명하복 위계질서는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축구장 안팎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월드컵이 다가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김없이 되풀이 될 대규모 응원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세월호의 아픔이나 그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다시 침몰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월드컵 특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내고자 하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각 나라 방송사들 그리고 거대 기업의 패스 플레이는 너무도 정교해서 진짜 그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차분하게 월드컵을 맞이해야 합니다. 거대하고 화려하게 응원해야 한다는 생각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상업화 우려까지 있는 요란한 거리 응원은 진정한 우애와 따스한 공감이 아니라 ‘덮어놓고 대~한민국’이라는 저열한 애국주의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감독님과 선수들은 고결한 땀방울과 날카로운 판단력과 우아한 스타일로 아름답게 이기는 축구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90년대 일본의 축구 스타로 홍명보 감독님의 ‘맞수’로 불렸던 이하라 마사미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항상 홍명보가 막아냈다. 아, 도대체 왜 그는 늘 그 곳에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감독님은 2007년 아시안컵 4강전 때, 심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선수들과 함께 하려고 그라운드에 섰다가 여덟 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런던 올림픽 때는, 주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주영과 박종우 곁에 서 있었습니다. 언제나 있어야 할 장소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가 브라질 월드컵 한국팀 벤치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경기를 기대합니다. 혹시 응원 소리가 약하더라도 오해하지 마십시오.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차분하지만, 우애와 연대로 가슴 벅찬 응원을 하겠습니다.

축구평론가 정윤수 올림.

* 한국일보는 월드컵 기간 중 주요경기에 대한 핵심분석을 다룰 칼럼, '정윤수의 정곡 찌르기'를 연재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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