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미국에서 1년 간 지내 보니 한국의 주택임대차 관행이 새삼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는 전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월세도 미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월세는 통상 일정한 보증금에 매달 얼마씩의 세를 내는 방식인데, 월세가 제때 걷히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집주인이 미리 1년치 월세 금액을 보증금으로 받는다. 하지만 미국은 보증금(Deposit)이 거의 없거나 기껏해야 한 달 월세 정도를 받아 세입자가 이사할 때 건물 내부의 훼손 정도를 점검해 수리비로 상계한다.
▦ 전ㆍ월세가 혼재하다 보니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또 있다. 전세금을 월세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금리인 전월세 전환율이 유난히 높다. 요즘 서울시대 대학가 앞의 원룸(전용면적 20㎡) 전세금이 7,000만원인데, 이를 월세로 바꾸면 보증금 1,000만원에 50~60만원을 줘야 한다. 보증금을 1,000만원씩 낮출 때마다 월세는 10만원씩 늘어나니 연 12%에 달하는 금리다. 3% 안팎인 은행이자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다.
▦ 특이한 건 집값이 낮을수록, 집이 작을수록 전월세전환율이 높게 책정된다는 점이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보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저소득층이 세 들어 사는 원룸이나 단독ㆍ다가구가, 강남보다는 강북이 더 높다. 서울시가 내놓은 올 1분기 전월세전환율은 평균 7.7%인데, 종로구는 8.8%인 반면 서초구는 6.9%였다. 이에 대해 중개업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도가 낮으면 오히려 대출이자가 더 비싸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한다. 월세 지불능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는 논리다.
▦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최근 부분 수정, 다주택자의 임대소득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부동산시장 활성화 의지는 이해하지만, 집 있는 사람만 챙길 일이 아니다. 비싼 월세로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전월세전환율 상한선은 10%로 규정돼 있지만 이를 강제할 조항이 없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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