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우리나라에서 ‘부총리'란 직책이 처음 등장한 건 박정희 대통령 때다. 1964년 경제기획원 장관을 부총리로 임명해 경제정책을 총괄토록 한 것이 그 시초다. 올해로 벌써 50년이 됐다.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그리고 기획재정부까지 부처 명칭은 수없이 바뀌어왔지만, 경제부총리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꼭 경제부총리만 있었던 건 아니다. 복수 부총리를 둔 정권도 있었고, 아예 부총리제를 없앤 정권도 있었다. 예컨대 박정희~전두환 정부 때엔 경제부총리뿐이었지만,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선 경제부총리 외에 통일부총리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 초반에는 외환위기 책임차원에서 부총리직이 폐지됐지만, 후반부 들어서는 경제부총리가 부활되고 교육부총리까지 도입됐다. 경제와 교육, 양대 부총리체제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부총리 없는 유일한 정권이었다.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경제?교육부총리를 모두 폐지했고, 임기 내내 장관들로만 정부를 꾸려갔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 ‘투 톱'을 선택했다. 취임과 함께 경제부총리부터 부활시켰던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운영혁신의 일환으로 교육부총리 도입 방침을 밝혔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면 박근혜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경제와 교육, 양 부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을 꾸려가게 될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지난 정부가 폐지했던 경제부총리제를 되살려 낸 건 예견된 일이었다. 단순히 아버지가 만든 자리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실제 박 대통령 스스로 경제부총리제의 장점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시대의 경제부총리는 아주 효율적 제도였다. 국가가 경제개발의 모든 밑그림을 그리고 이에 맞춰 자원을 일일이 통제?배분하던 시절, 정부엔 이 모든 과정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갈 강력한 야전사령관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경제부총리였다. 경제부총리 제도가 우리나라 고도압축성장의 견인차였다는 사실에는 학자들도 관료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대통령의 딸로서, 또 퍼스트레이디로서 이를 지켜본 박 대통령의 뇌리에는 '경제부총리 중심의 경제정책운용' 원칙이 강하게 뿌리내려 있었을 것이다.
교육부총리 카드를 꺼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권 1년여를 거치면서 교육 복지 환경 노동 문화 등 비경제분야도 경제부총리 같은 조정자가 있으면 효율적일 것이라는, 어쩌면 이들 분야야말로 일반 경제보다 갈등의 강도가 훨씬 세고 이해조정이 어렵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더욱 절실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과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나빠지지야 않겠지만, 과거 교육부총리가 사회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부총리급 장관'으로 끝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관가에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분위기다.
분명한 건 교육부총리를 도입하더라도, 아니 분야를 더 세분해 부총리를 3, 4명쯤 두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스태프들은 부처 레벨에서 이해조정과 정책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져 골치 아픈 현안들이 가급적 청와대까지 올라오지 않기를 원하겠지만, 그래서 대통령은 정무와 외교, 통일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겠지만, 부총리 아니라 총리가 몇 명 된다 해도 그렇게는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윤?전 대결’로 불렸던 영리의료법인 도입논란을 생각해보자. 숱한 토론에도 불구하고 결론 나지 않았던 건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총리급이 아니었기 때문도,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이 너무 고집스러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런 인화성 강한 사안에 대한 최종결론은 대통령의 몫인데, 당시 청와대는 뒤로 빠지기 만 했다.
사사건건 청와대가 나서서도 안되지만, 내각과 부총리 뒤에 숨어서도 안 된다. 박 대통령은 투 톱으로 앞세운 부총리들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겠지만, 어쩌면 개발시대를 이끌었던 장기영 김학렬 남덕우 같은 ‘전설적 부총리’들처럼 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2014년이다. 어차피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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