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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 자유 시험대에 서다

입력
2014.06.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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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기밀 폭로 NYT 기자에 대법원, 증언 거부 신청 각하

"오바마 정부 정보 통제 심각" 언론계 기밀보도 공동대응키로

취재원은 법원의 ‘공개’ 판결까지 거부하면서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미국 사법부와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가 언론 자유를 놓고 세기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일찍이 토크빌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한 ‘언론의 자유’를 이해하는 지금까지 미국의 기준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사건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타임스 제임스 라이즌은 국가안보 분야 전문기자다. 그는 이 해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가안보 기밀프로그램인 도청시스템을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문제는 라이즌이 같은 해 전쟁 국가(State of War)라는 논픽션을 내면서 불거졌다. 이 책에는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공작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CIA가 러시아 과학자를 이용해 이란에 엉터리 핵 관련 기술을 팔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란과 대외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공개돼서는 안 될 정보였다.

당황한 미 당국은 CIA 내부의 정보 제공자를 찾기 시작했다. 당국은 전직 CIA요원인 제프리 스털링을 유출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라이즌에게 기밀자료를 넘긴 혐의로 스털링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스털링의 범죄 혐의를 사실로 확인해 줄 가장 확실한 증인은 물론 라이즌이었다. 미 당국은 라이즌에게 법정에 출두해 스털링이 유출자가 맞는지 증언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라이즌은 “취재원 보호는 언론 자유의 핵심”이라며 거부했다.

이후 미 당국과 라이즌의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미 검찰은 연방 대배심에서 열리는 스털링 재판의 증인으로 라이즌을 2008년 처음 소환했다. 라이즌이 이를 거부하자 2010년 다시 소환했다. 당시 라이즌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법정으로 출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즌의 증인 출두 문제를 놓고 2011년 열린 1심 재판에서 법원은 라이즌의 손을 들어주는 듯 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인 소환장은 기자의 노트북을 겨냥하는 정부의 총구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라이즌이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항소했고 지난해 열린 미 항소법원에서 이 판결은 뒤집어졌다. 항소법원은 “불법으로 정보를 제공 받은 기자는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라이즌에게 재판 출석을 명령했다. 이에 대해 라이즌의 변호인들은 “취재원의 신분에 대한 비밀보장 없이 기자의 취재는 불가능하다”며 대법원이 판단해주도록 요청했다.

미 대법원은 지난 3일 이 사건을 다루지 않기로 결정해 사실상 항소법원의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취재원 보호라는 기자의 권리 보장에 실패한 대법원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라이즌은 “취재원을 공개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법부와도 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사건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도 드러났듯 미국 정부가 얼마나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공작을 벌이고 있으며 그 정보를 비밀로 하기 위해 또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잘 보여준다. 9ㆍ11 이후 더욱 심해진 이 같은 행태는 민주당인 오바마 정부에서도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기밀자료를 보도한 언론인을 압박하는 데는 사법부도 한몫을 한다. 미 사법부는 언론에 기밀자료를 넘긴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기 위해 AP통신 기자의 휴대폰 통화 목록을 은밀히 조사하고, 폭스뉴스 기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등 전방위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라이즌의 경우도 그의 전화목록과 은행 거래기록, 여행일정과 목적지 등이 2011년 법원에 제출됐다. 2005년에는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와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가 법정모독죄로 18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인들은 오바마 정부의 언론 정책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레오나르도 다우니 전 편집국장은 오바마를 두고 “닉슨 이후 정보 통제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라고 비판했다. 최근 몇몇 주요 언론사 대표들이 국가 기밀 보도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는 등 라이즌 사건에 미 주요 언론사들이 공동대응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언론 자유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1972년 닉슨 정부의 불법도청 내용을 담은 ‘워터게이트 사건’를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33년 간 이 사건을 제보해 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제보자는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인 마크 펠트였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펠트가 2005년 지인을 통해 자신이 취재원이었음을 시인한 뒤였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펠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입으로 그의 이름을 공개하지는 않기로 했고 그 약속을 지켰으며 그 일로 감옥에 끌려가지도 않았다.

항소법원이 이번에도 같은 판결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언론인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지난달 “기자가 직무와 관련해 감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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