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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외제 차를 타야 하는 이유

입력
2014.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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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김 형! 여기가 선글라스 놓는 곳이야. 여길 누르면 열리잖아. 이쪽에는 유에스비를 꽂게 되어 있지, 녹음테이프 따윈 필요 없어. 300곡이 넘는 노래가 들어있는데 무작위로 나오게 할 수도 있다니까.” 흥미있게 듣는 척했더니 아주 신이 났다. “운전하는 동안 전화기를 들지 않고도 전화를 할 수 있고, 노래방 기능도 있어.” 이젠 아예 길모퉁이에 차를 세워 놓고 이것저것 작동해 보인다. 지겨운 내색은 못하겠고 약간의 반응을 보이며 듣는 시늉을 하자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일의 자초지종은 이렇다. 사무실에서 조금 먼 곳에 가서 처리할 일이 생겼는데 차를 가져오지 않아 그 자의 차를 얻어 타게 됐다. 마침 그 자는 새 차를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자는 평소에도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을 한도 끝도 없이 해대는 인물임을 잘 알기에 동행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지만 외통수로 걸렸다. 새 차를 자랑하고 싶은 그 자의 먹이가 되고 만 것이다. 차에는 관심이 없고 특히 다른 사람의 차에 대해서는 더더욱 관심이 없는데, 그 자의 차를 탄 직후부터 새 차의 가격, 모델 종류, 다른 차와의 차이점, 중고차로 내놓았을 때의 시세 등을 들었다. 실제로는 10여분 남짓인데 마치 수십 분이 지난 듯했다. 그 후로 차의 내부 인테리어, 음향기기 등에 대한 설명을 갓길에 세워 둔 차 안에서 진지한 아니 진지한 것 같은 자세로 열심히 듣는 척하고 있었다.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이 버튼, 저 손잡이 등을 움직여 보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그 자에게 약속시간을 상기시켰더니 “이 차는 밟으면 160㎞는 금방 나와! 몰랐지?”하는 거였다.

내가 아무리 차에 관심이 없어도 그 자가 열거한 내용쯤이야 진작 알고 있다. 그러나 차마 그의 면전에서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는 없었다. 첫째는 그가 나보다 몇 살이라도 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그 놈의 나이가 뭔지 모르겠다. 두 번째는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허점이 많다 해도 그 자는 절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으면 잘못을 시인해도 몇 번 했을 사안인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그의 당당한(?) 모습에 감탄인지 비난인지 모를 시선으로 한참 쳐다본 적도 있었다. 창피한 줄을 모르면 세상 살기 편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자이기에 괜한 한 마디 했다가 감당 못할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고나 할까.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자신이 대단히 유식한 것으로 착각해 모든 일에 참견하곤 하는 그 자에게 복수를 준비 중이다. 나는 “복수는 유치할수록 통쾌하다”는 말이 진리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 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 가운데 하나는 고급 외제차를 타는 것이다. 마이바흐나 페라리 정도는 아니라도 벤츠나 BMW 상급 모델이면 된다. 나의 차를 그의 차 옆에 세우는 상상을 한다. 무심히 차에서 내린 후 우연히, 이게 중요하다, 우연히 그 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에서 존경의 빛이 보인다. 이런 자일수록 자기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납작 엎드리기 마련이다. 그 자가 부러워하는 고급 외제차가 그간 만만히 여겨 오던 나의 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차에 대해 그리고 차와 관련된 얘기는 다시는 내 앞에서 입 밖에 나오지 않으리라. 아니 내 차의 성능과 관리 방법 등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을지 모르겠다. 그럴 때면 무표정한 얼굴에 초점 없는 눈으로 살짝 허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리라. “이 정도 급의 차는 관리를 따로 해줘서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한 후 유유히 돌아서서 썩소를 날리는 장면이 끝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종류의 인간은 내가 철들 무렵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달리하여 주변에 줄곧 한 두 명은 꼭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나의 주위에 이런 인간들이 서식하는 것이 운이 나빠서인지 아니면 이런 부류가 원래 많은데 너그러이 웃고 넘기지 못하는 나의 조잔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남들에게 진저리나는 재수없는 인간으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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