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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리의 무노조경영

입력
2014.06.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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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요즘 삼성전자가 노동문제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올해 초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젊은 여성노동자들의 피맺힌 사연을 담은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상영돼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작년 7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협력업체들에 소속돼 있는 수리기사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더니, 이어 조합원과 노조간부가 노조탄압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문제삼는 유서를 남기며 자결하는 일이 발생했다. 원청인 삼성전자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만든 노조이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삼성전자의 비정규직임을 자처하며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거센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회사 주위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250여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가 꾸려져 노조와 연대해 연일 시위와 집회, 기자회견 등으로 안티-삼성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다. 삼성으로선 여간 곤혹스런 상황이 아닐 듯하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노동문제들에 시달리는 배경에는 그들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무노조경영의 철칙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본래 무노조경영이란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관리를 보다 잘 해주는 경영방식을 뜻한다. 다시 말해, 무노조경영에는 노조있는 기업과 비교해 종업원들이 굳이 노조를 찾을 필요가 없도록 그들에 대한 처우와 배려, 소통을 더욱 잘해 나가겠다는 경영자의 철학과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초우량기업들이 무노조경영을 실천하며 노사상생의 조직문화를 훌륭하게 꾸려가는 예들을 적잖게 찾아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무노조경영도 한때는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금의 노동문제들을 살펴보면 삼성의 무노조경영이 본래 취지에서 한참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멀쩡한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을 직업병을 얻었음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경영진의 모습이 참으로 억지스럽다.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이 드높아지는 동안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허덕이던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조 깃발을 올렸는데, 어떻게 탄압했길래 몇 달 새 노동자 열사를 연이어 만들어내고 있는지 실로 유감스럽다. 지난해에는 계열사의 임직원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규찰했다는 그룹차원의 노사전략 문건이 국회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실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러니 무노조경영이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무서운 괴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사람관리를 보다 잘하겠다는 취지의 무노조경영이 오히려 노동권을 부정하고 파괴하며 세상 이치를 크게 거스르는 역리(逆理)로 변질되고 있으니 말이다.

특정기업의 노무관리에 뭔 참견인가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업이 대한민국의 경제계를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기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장 윗물의 기업이 헌법의 노동권을 억지스럽게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면 지켜보는 아랫물의 수많은 기업들도 마찬가지 행동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그릇된 향도의 사회적 책임을 문제 삼는 것이다. 또한 남들에게 피눈물의 아픔과 분노를 안겨주는 무노조경영이 세상 민심을 잃고 기업의 지속발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업보로 작용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에게 분노와 원성의 표적이 되는 무노조경영이라면 순리의 참뜻을 잃고 역리의 파행을 낳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기업 총수가 나서서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든 것을 과감하게 바꿔나가자는 유명한 신경영의 혁신 일화는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삼성이 그 혁신의 동력으로 그 동안 세계적인 경쟁력을 성취해왔다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또 다른 혁신들이 추동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혁신의 핵심에는 역리가 된 무노조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를 온전하게 지켜주는 ‘신’ 노사문화가 자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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