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하이힐’로 3년 만에 컴백... 충무로 재주꾼 장진 감독
이색 소재 영화화 어려웠지만 차승원 특유의 편안함이 상쇄
오랫동안 전력투구해 찍은 영화 다양성 꾀했다는 데 의미 있죠
장르를 뭐라 부르기 어렵다. 조직 폭력배가 등장해 회칼과 쇠파이프를 사정 없이 휘두른다. 조폭영화라 할 수 있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 할 거친 형사가 등장해 범죄자들을 단죄한다. 형사영화라 말할 수 있다. 조폭과 형사가 만났으니 몸동작이 많아질 수 밖에 없고 영화는 액션물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놓인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이 장진이다. 평범한 장르영화에 그칠 수 없다. 장르의 전형성을 뒤흔드는 커다란 변수가 들어간다. 몸에 흉터를 주름처럼 지니고 사는 열혈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의 몸 안에 여자가 숨어있다. 마음은 여자이고 몸마저 여자가 되고 싶은 욕구로 가득한 지욱의 고뇌가 조폭의 핏빛 행태와 맞부딪히며 영화 ‘하이힐’은 감정의 진폭을 빚어낸다. ‘하이힐’은 조폭영화도, 형사영화도 아닌 무규칙 이종 영화라 할 수 있다. 장 감독 특유의 재담이 여전히 담겨있으나 웃음기는 많이 빠졌다.
데뷔 만 16년이 됐어도 여전히 평범과 안일을 거부하는 충무로 재주꾼 장진 감독을 5일 오전 서울 통인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 배급 사정이 좋지 않다”며 얼굴에 잠시 그늘을 드리웠다. 4일 개봉한 ‘하이힐’은 6만7,969명이 보며 일일 흥행순위 6위에 올랐다. 장 감독은 “대중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터부시 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_다작인 편인데 ‘로맨틱 헤븐’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TV 코미디프로그램) ‘SNL라이브 코리아’에 매달리느라 1년 반 정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제도권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내가 너무 상업영화 감독이 돼 있었다. 나 스스로 재미가 없었다. 제도권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하니 피로가 쌓인 것 같기도 하다.”
_트랜스젠더와 액션을 결합시킨 점이 특이하다.
“트랜스젠더는 특이한 소재가 아니다. 전에는 코미디로 또는 말초적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내 영화도 그런 면이 있으나 포장 자체를 어둡게 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다. 대중이 거부감 없이 영화를 즐길까 나도 궁금했다. 영화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차승원의 대중적인 편안함이 그나마 그 어려움을 상쇄했다.”
_차승원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나.
“그렇다. 승원씨가 제일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장을 해도 전혀 안 어울리는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 게다가 승원씨는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다. 조금도 수동적이지 않고 쉽게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승원씨도 좀 센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원래 지욱은 애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승원씨가 ‘관객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해 미혼으로 수정했다.”
_대중의 인식과 달리 어두운 액션물에도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만드는 재미가 있다. 나처럼 대화로 이야기를 푸는 감독에겐 액션으로 이미지를 만들 때의 즐거움이 있다. 한국 관객이 액션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것 같기도 하고…전작들과 달리 ‘하이힐’은 촬영감독과 무술감독 등 주변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나는 오로지 배우들 연기에 집중했다.”
_활동 분야가 많아 집중력이 떨어지지는 않나. 뮤지컬 ‘디셈버’는 혹평을 받았다.
“나도 요즘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이젠 (활동분야를 좁혀 어느 하나에 집중해야 할) 그런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이힐’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전력투구한 영화다. ‘디셈버’의 실패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내 실력으로는 더 오랜 시간 작업을 했어야 했다.”
_개봉 뒤 ‘하이힐’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상업영화의 궤도 안에서 어느 정도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잘 살펴볼 생각이다.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정하기도 힘들었고 밀고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해냈다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다. 대중영화의 다양성을 꾀하려 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장 감독은 차기작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촬영을 거의 마쳤다. 어린 시절 이산가족이 된 두 형제가 어머니를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전한다. 장 감독은 “빠른 속도로 찍은, 대화가 많은 영화”라고 짧게 소개했다. 그는 가을에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 개ㆍ폐막식의 총연출도 맡고 있는데 “중국 쪽에서 제안한 멜로영화를 다음 작품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에일리언 안첨지’를 내년에 찍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하루 여섯 시간 수면이면 푹 잔 것”이라고 하는 장 감독의 머리 속은 여전히 휴식을 모르는 듯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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