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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의 유혹, '몰빵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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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의 유혹, '몰빵 가입'

입력
2014.06.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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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가입 허용

보험사들 실적 높이려 중복가입 여부 심사 소홀히

소득 없이도 고액 보험 가능

보험사 "정보 수집 한계"

"가입자 재무상황 모르는데 어떻게 계약심사 하나"

"보험정보 통합시스템 서둘러 도입해야" 지적

지난 3월 초 지방의 한 고속도로. 연인 관계로 추정되는 30대 초반 남성 A씨와 20대 여성 B씨가 타고 있던 승용차가 터널 입구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였던 A씨와 동승자인 B씨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전까지 추웠던 날씨에서 벗어나 햇살이 내리쬐며 봄기운이 완연했던 당일, 그것도 오후 1~2시 사이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춘곤증을 이기지 못한 운전자의 졸음운전 혹은 차량 고장이라는 데 초기 수사의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를 두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운전자인 A씨가 사고 발생 불과 2~3주 전 단 하루만에 고액을 받을 수 있는 보험 여러 건에 가입했던 것이 확인된 것. A씨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가족 2명이 각각 10억여원과 7억여원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그는 동승자였던 B씨 앞으로도 3억~4억원 가량이 지급되는 보험에 가입해 둔 사실도 밝혀졌다. 수령금액만 20억원이 넘는 보험에 가입한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해 사망한 것이다.

의혹은 함께 사망한 B씨 역시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커졌다. B씨도 어머니를 수익자로 한 6억~7억원에 이르는 고액 보험에 가입한 것. B씨의 보험 가입 시기는 A씨가 고액 보험에 대거 가입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의 수사 방향은 급 전환했다. 통상 교통사고 사망사건의 경우 길어야 한 달 정도면 해결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보통의 교통사고와는 다른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수사는 3개월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상황. 사고 당시 차량이 시속 160km로 달렸으며, 제동장치를 밟은 흔적(스키드마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졸음운전 등의 정황에서 의도적일 수 있다는 의혹으로도 비쳐졌다. 경찰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극단적인 ‘보험사기’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원인 분석을 의뢰한 상태라서 지금 상태로는 (보험사기 여부를)판단하기 어렵지만 30억원에 육박하는 보험은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며 “국과수 결과가 나오면 검찰과 상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보험 가입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보험사기 여부를 떠나 일반인이 과도하게 고액 보험에 여러 건 가입하는데도 걸러내지 못해 보험사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사람이 이처럼 10억원이 넘는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실제 A씨의 경우 육체노동자로 소득이 높지 않고, B씨는 아예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보험금이 적절한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실적을 높이려 가입을 승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실적을 쌓으려 보험금이 과다하게 나갈 수 있는 부분을 줄이거나 계약자의 중복 가입 여부 심사 등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보험사도 할 말은 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언더라이팅(보험 계약심사업무)을 제대로 하려면 가입자의 재무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보험사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며 “보험료를 내고 가입하겠다는 계약자에게 ‘당신은 재무상황이 안 좋으니 다음에 가입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A씨처럼 하루에 몰아서 보험에 가입할 경우 중복가입 조회가 되지 않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생명보험와 손해보험사의 경우 각각의 협회를 통해 가입여부 및 보험금 지급 이력 조회가 가능하나 생보사와 손보사간에는 불가능하다”며 “더욱이 우체국이나 새마을금고, 신협, 수협 등 유사보험업체를 통해 보험에 가입할 경우는 가입여부조차 조회가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 중심으로 생손보사의 정보공유 및 통합운영을 추진했지만, 통합기구를 놓고 생보협회와 손보협회가 갈등을 빚어 도입이 표류하다 카드 3사 고객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소강된 상태.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된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보험정보를 공유하는 통합기구를 연내 마련한다는 방침”이라며 “생손보협회, 보험개발원, 유사보험업체 등이 보유한 정보 등을 통합하는 한편, 청약 단계부터 실시간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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