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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피아 척결을 관료 손에?

입력
2014.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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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시사평론가

다들 ‘어제’까지 해오던 대로 했다. 해경도, 안전행정부도, 해양수산부도, 청해진해운도, 언론도, 청와대도.

4월 16일 오전 8시52분, 단원고 2학년 최모 군이 신고전화를 했다. 해경은 ‘경도와 위도’만 물었다. 왜? 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안행부 2차관도 팩스를 취합해 구조자 숫자라며 그냥 읽었을 뿐이다. 어제까지 해 온 대로. 출동한 해경도 마찬가지다. 배 몰고 나갔다가 “어라? 저 큰 배가 누워 있네! 보이는 사람이나 건지자” 선실 창문 깨보려 망치질하다 안되니까 “역부족이야. 업체 불러야 되겠어”. 그래서 언딘을 불렀다. 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오죽하면 침몰 후 6시간 동안 대통령에게 “300명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 갇혀있다”는 보고가 안됐겠는가. 우왕좌왕하느라 그랬다. 20년 동안 대형 해양사고 한 번도 없었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예 모른 것이다. 참고해야 할 ‘어제’가 20년 동안 없었으니까. 사람 머릿수도 제대로 못 세는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어떻게 정확한 대책을 보고하겠는가.

해운사는 과적인 줄 알면서도 평형수까지 빼가며 짐을 몽땅 실었다. 왜? 어제까지 그렇게 돈 벌어왔으니까. 과적이나 선박 불법증축도 다 눈 감아줬으니까. 때 되면 뇌물 바치고, 아예 법인카드까지 쥐어주면서 ‘관리’해왔으니까. 일부 언론도 마찬가지. 보도자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썼다. 왜? 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 사퇴파동 역시 어제와 결별하지 못해 일어난 사단이다. 그 정도 전관예우는 별 문제가 안 되었으니까. 그러다 본인은 물론 지명자에게도 상처만 남긴 채 ‘국민 검사’는 쓸쓸히 퇴장했다.

관료들은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어제까지 해 온 대로 했을 뿐이며, 사람들이 이번처럼 분노한 적이 어제까지는 없었으니까.

우리나라 관료들이 두고 쓰는 말이 있다. “돈과 사람 없어서 일 못한다”와, “어제까지 이러 이러하게 해왔으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는 안된다”는 말이다. 관료들은 왜 어제에 집착할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그렇게 해 오던 방식’이 뼛속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유전자이자, 문신이다. 어제까지 해 온 대로 해야 책임을 면하고 혼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에다 뭐 하나만 살짝 얹은 흉내만 내도 ‘우수 혁신사례’로 뽑혀 상까지 받는다. 그러므로 관료제 하에서 혁신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그 기준이 되는 어제는 어디서 왔는가. 두 말할 필요 없이 ‘어제의 어제’에서 왔다. 어제를 따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일제강점기 36년을 만나게 된다. 일제에 의해 이른바 ‘근대적 국가 기틀’이 이식됐고, 그 틀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면서 관행을 넘어 전범(典範)으로 자리 잡았다. 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오늘 그렇게 하고, 오늘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내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주류와 지배계층, 지배 이데올로기는 관민유착 풍토에서 부패라는 이름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면서 ‘괴물’이 됐다. 세월호 사태는 그런 동맥경화증이 악화할 대로 악화하다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시작은 선박침몰 ‘사고’였지만, 결과는 수백 명 몰살이라는 일대 ‘사건’이다.

4ㆍ16 참사는 ‘무혈혁명’ 수준으로 어제와의 결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관료주의와 천민자본주의라는 적폐를 고치지 않으면 어떤 수습책도 무의미하다. 인식의 변화 없이는 또 다른 세월호들이 도처에 지뢰처럼 매설돼 있다. 정부개조를 관료들 손에 맡겨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지시를 받들어 보고서 만들 듯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제와 총체적으로 결별하지 않으면 개조 지시자나 그 지시받는 사람이나, 결국 또 다시 어제를 컨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 주도 개발독재시대에는 ‘사람 경시’가 그렇게 큰 흠이 아니었다. 그게 개발연대가 남긴 최악의 유산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야만을 벗어날 수 없다. 어제와 완전히 단절하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단절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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