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과거에 머물자 하고, 보수는 미래로 향하자 한다. 세월호가 만든 역설일까. 하지만 그럴 만도 하다. 환멸을 느낄 때 우린 앞으로 나아가고 다시 환상에 빠지면 멈춰서기 때문.
“나를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며, 무엇보다도 거기에 나도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회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나는 강의계획서에 있는 대로 강의를 진행했다. (…) 가라앉은 세월은 계속 나를 붙잡고 멈추게 하려고 했지만, 나는 예정된 일상의 시간이 탈 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바쁘게 지냈다. (…) 세월호, 단원고, 청해진해운과 같은 고유명사를 부각시키는 일은, 마치 그들을 기억하려는 작업처럼 보여도 사실은 망각을 위한 준비 단계로 봐야 한다. 청와대 대변인 입에서 나온 “순수 유가족”이라는 말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지금 이 사회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우선 이 문제를 특정 소수의 문제로 한정해 나머지 이들을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그것만 성공한다면 나머지 일은 그야말로 시간이 해결해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고유명사화’에 저항하면서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고유명사를 빼고 이 사건을 ‘4ㆍ16’이라고 부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다. ‘4ㆍ16’이라는 시간은 결코 ‘그들’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 충격으로 일상이 깨지면서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됐다. 우리는 세월호를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4ㆍ16’은 분명히 공유했다. (…) 2014년 4월16일이 다시 돌아오진 않지만, 16일은 한달에 한번, 4월은 1년에 한번 꼭 돌아온다. 시간은 흘러도 멈춘 세월은 다시 돌아온다.”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한겨레 ‘세상 읽기’ㆍ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전문 보기
“사고에 관한 한 우리는 파렴치하게 구태의연하다. 국보 제1호를 태워먹고 참괴한 것도 잠시다. 반성과 결의도 일과성으로 그치고 도로 아미타불이다. 참사 이후에도 줄지어 터지는 사고에 “온다 하면 소나기”라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운전자와 보행자와 여러 수준에서의 법규위반이다. 교통사고 양산사회가 동시에 대형사고 양산 사회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법규 위반은 물론 준법정신의 결여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또 심층적으로 보면 공격성의 방임 때문이기도 하다. (…) 사고 빈발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결여 사이에는 필연의 고리가 있다. (…) 충격과 슬픔에서 유래한 애도의 장기화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평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구태의연한 대형사고와 결별하는 계기로 삼아야 애도의 진정성이 증명될 것이다.”
-이젠 평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동아일보 ‘시론’ㆍ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 전문 보기
같은 소설의 독법도 다르다. 어찌 벌써 잊을 수 있나, 살아남은 자는 응당 기억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진보). 사람은 사는 게 자연스럽고 살게 하는 건 망각일 터(보수).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소녀는 6월의 분수대가 뿜어내는 눈부신 물줄기를 견딜 수 없어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건다. 얼마 전 나온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는, 혹은 잊고 있다는 점에서 5월 광주와 세월호는 다르지 않다. 외면만큼 쉬운 게 없다고 하지만, 이건 외면이라기보다는 망각에 가깝다. 광주는 30년이 넘었지만 ‘세월호’는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박제화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과장일까.”
-어떻게 벌써 잊을 수 있나(경향신문 ‘별별시선’ㆍ정지은 문화평론가) ☞ 전문 보기
“누구라도 평생을 울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잊을 건 잊어야 한다. (…) 한강의 신작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이야기지만, 2014년 진도 이야기로도 읽힌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시신(屍身)들을 돌봐주는 일을 돕다가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 소년을 통해 작가는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조사(弔辭)일 수 있다. (…) 비겁하지 않기 위해 한강과 에릭 호퍼는 과거의 실패를 현재의 성찰로 옮겨놓는 ‘기억의 연금술’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히 기억만 하는 것으로는 피해자나 약자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음도 강조한다. ‘무엇을 했냐’를 밝히면서 ‘무엇을 했어야 했나’를 동시에 알려주는 ‘역사의 복화술(腹話術)’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보다는 ‘해야 할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 가슴 위가 아닌 가슴속에 노란 리본을 계속 달아야 한다.”
-다시, 記憶을 기억하자(조선일보 ‘人文의 향연’ㆍ김미현 문학평론가) ☞ 전문 보기
6ㆍ4 지방선거가 코 앞이다. 기회를 구걸하는 여당과 심판을 종용하는 야당. 여당은 약속하고 야당은 꾸짖는다. 공약은 미래, 이력은 과거. 야가 유리하다. 정권의 헛공약 전력 덕.
“지난 대선 때 그토록 경제민주화와 기초복지를 확약했건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휴지통에 던져버리고도 태연했던 정권입니다. (…) 변화의 외양을 띠는 이유는 단 하나, 선거가 코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칠 것 없는 정권도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온갖 코스프레, 정치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누구를 뽑는 투표 행위는, 다른 누구를 뽑지 않겠다는 배제적 심판 행위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고르긴 어렵지만, 최악을 분별하고 걸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정색하고 “지킬 만한 공약만 모았다”고 했지만, 당선되자마자 핵심 공약부터 폐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예를 보면서 공약에 대한 냉소감은 더해졌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공약을 이행할 후보의 사람됨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낫겠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한 신뢰성 있는 지표가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한 표의 힘(한겨레 기명 칼럼ㆍ한인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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