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밤의 고양이

입력
2014.06.01 14:38
0 0

비가 제법 쏟아지던 어느 밤, 집에 들어서다 베란다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뒷발을 접고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실루엣이 가로등 역광 속에서 도도하게 드러났다. 녀석이 난간을 넘어 급히 모습을 감춘 건 나의 기척 때문이었다. 굳이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쨌건 빗속으로 쫓아낸 셈이 되어 유감이었다. 그 유감 반에 호기심 반이 섞여 다음날부터 베란다 구석에 사료와 물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간은 빈 그릇을 확인하고서야 밥을 먹고 목을 축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얼마 동안은 경계를 하며 줄곧 두리번거리면서도 굳이 나를 피하지 않고 밥그릇에 머리를 묻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요즘은 별로 눈치를 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은 깊은 밤에만 들르니 짐작이 그러할 따름이다. 엊그제 고양이와 나는 세 보폭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녀석의 생김새를 잘 모른다. 조금 더 그쪽으로 다가가거나 손전등 불빛을 비추면 재빨리 도망가 버려서 털이 정확히 무슨 색깔인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빛에 예민한 고양이는 밤눈이 밝다니까 내 모습과 표정이 잘 보이겠지. 공평한 어둠 속에서 정직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고양이는 나를 뚜렷이 보고 나는 고양이를 잘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하기도 하다. 시선을 교환하는 사이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