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를 뒤덮은 정서는 분노다. 근인(近因)은 세월호 참사일 터. 속수무책 권력의 몰염치 적반하장. 모여 우는 게 죄라니. 비통이 불온하다니. 눈물마저 전유하려 하다니.
“눈물로 가득한 봄날이다. 세월호에서 피붙이를 잃은 이들의 통곡과 피눈물이 한반도를 적시고 있다. (…) (조선 후기 문장가) 심노숭은 눈물이 마음에서도 나오고 눈에서도 나온다고 했다. 구름을 눈, 땅을 마음에 비유한다면 눈물은 비와 같다는 것이다. 비는 구름과 땅을 통하는 기(氣)의 감응에 의해 내리되, 구름에도 속하지 않고 땅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심노숭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물을 흘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느꺼움(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 벅참- 기자 주)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액(液)이든 즙(汁)이든 정치인들의 눈에서 흐르는 물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그들에게 확인할 질문을 챙기기에도 빠듯하다. 언제 느꺼움이 찾아들었느냐고. 죽은 이들의 속삭임을 어디서 들었느냐고.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무엇을 산 자들에게 당부하였느냐고.”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한국일보 ‘문화산책’ㆍ김탁환 소설가) ☞ 전문 보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두운 바닷물 속에 다시 돌아올 길 없이 잠긴 생령들을 생각하며, 뭇사람들의 인정이 그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과 죄의식을 어떤 방식으로건 표현하고 싶어할 때, 다른 한편에는 그 애도의 마음을 의심하고 우려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 감정까지 차단하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그 언저리를 맴도는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 저 깊고 넓은 애도의 감정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을 그들의 사과나 애도에 진심이 담겨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 ‘대박’을, ‘원수’ 규제를, 해경 ‘해체’를 말하였다. 대통령은 감정의 동의를 얻기보다는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고 싶어한다. 파도에는 격렬한 출렁임이 있을 뿐 깊이가 없다.”
-진정성의 정치(경향신문 ‘밤이 선생이다’ㆍ황현산 문학평론가) ☞ 전문 보기
“참사 이후 한달도 더 지나고 5천만이 다 운 뒤에야 보인 그 권력의 눈물은 짜지 않았다. (…) 노란 눈물은 팽목항 방파제를 넘어 눈물의 고향 안산을 돌아 청계광장 가슴을 주말마다 물들이고 있다. 노란색에 시비를 거는 이들은 오래도록 지독하게 써먹어온 빨갱이라는 붉은색 위에 새 색깔을 덧칠하고 있다. 지상의 삼원색 중 마침내 두 가지 색에 매카시즘 족쇄를 씌우기에 이른 것이다. (…) 집회 현장에서 노란 리본을 단 시민을 차단하라는 지침에서 보듯 색을 향한 의심은 모여서 우는 것도 죄가 된다는 실로 야만적인 발상이다.”
-노란 눈물(한겨레 ‘크리틱’ㆍ서해성 소설가) ☞ 전문 보기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을 부르는 건 뒤엉킨 분노. 물길 타고 가는 분노는 가지런히 목표를 향하지만 불 지르는 분노는 어지럽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경기(景氣)가 아니라 소외.
“‘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에서는 극도의 복수심이 읽힌다.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상대가 가진 것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가진 것이 활활 타오르다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더욱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병적 심리가 현대 사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만 펼쳐도 수많은 방화(放火)의 사례가 등장한다. (…) 그런데 누가 죽어도 좋다는 식의 ‘묻지마 방화’는 적어도 실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른바 다중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 정신분석학자들은 방화를 저지르는 행위를 충동조절장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멀게는 대구지하철역과 숭례문 방화, 가까이는 도곡역 방화와 장성 노인요양병원의 방화 의심 사건에서 보듯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절차를 거쳐서는 풀 길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진단이 그럴듯하다. 지금이 왕조 시대보다 더한 분노 사회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노 게이지’ 눈금이 치솟아 있는 것은 현실이다.”
-방화광(狂)과 분노사회(서울신문 ‘씨줄날줄’ㆍ서동철 논설위원) ☞ 전문 보기
“①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②떠드는 사람보다 입 다문 사람이 무섭다 ③화살은 심장을 관통하지만 화(火)는 영혼을 관통한다… 방화범죄 설명서라고 할까. 서울 도곡역 방화범 조○○(71)씨의 심리도 이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 조씨는 고립된 소시민이 좌절을 맛보았을 때 화를 참지 못해 이상행동을 저지르는 방화 ‘공식(公式)’을 그대로 따랐다. (…) 방화 동기는 사회의 병리적 단면을 보여준다. 서양에서는 보험금을 타내거나 쾌감을 느끼기 위해 불을 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동기들을 다 합쳐도 5% 미만이다. 절반 이상은 분을 참지 못하거나 우발적으로 불을 지른다. 그 비율은 점점 커지고 있다. (…) 방화는 낮은 자존감과 관계가 깊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사회적 자산이나 소통능력이 떨어진다. 분노 대상에게 달려들 배짱이 없다. 그러니 지하철·병원·자동차 같은 무(無)생물에 몰래 불을 붙여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배려ㆍ관용이 적고 경쟁ㆍ모멸이 폭주하는 사회에서 화가 난 은둔자의 수는 빠르게 늘어난다. 어느새 우리는 방화왕국이 돼 가고 있다. (…) 분노는 달래주기 바라는 아기와 같다. 이를 잘 보듬어주는 ‘어머니사회’가 사회혁신의 큰 방향이 돼야 한다.”
-우리는 왜 방화왕국이 됐나(5월 30일자 중앙일보 ‘시시각각’ㆍ이규연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우리 경제는 2011년 이후 3년 넘게 침체기를 겪고 있다. 소비도 반 토막이다. 불황의 파장은 빈곤층을 넘어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랜 불황에서 쌓인 불안 증상, 거기서 싹트는 불만과 분노가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박근혜 정부는 바로 여기서 다시 진맥을 해봐야 한다. 연쇄적 안전사고로 빚어진 재난성 위기와, 장기 불황 때문에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깔린 경제적 위기부터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경기 침체에 재난까지 얹히는 바람에 분노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재난 대책만으로 위기 국면이 끝날 것이라고 속단해서도 안 된다. (…) 낯익은 얼굴을 등용하고 그동안 써먹던 정책을 조금 강화하는 식으로는 이번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경기 회복만큼 좋은 약은 없다.”
-赤字에 빠진 박근혜 정치(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송희영 주필) ☞ 전문 보기
안대희 파문으로 법조계를 보는 눈이 곱지 않다. 법피아(법조 마피아)에 비하면 관피아(관료 마피아)는 조족지혈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행여 불신이 이들에서 법으로 번지진 않을까.
“극단적으로 말해 법조인들 중에는 고시 한 번 붙은 걸 가지고 평생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조인이 필요하거나 중시되는 것은 그들이 법과 정의 질서를 세우는 사람들이며 논리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자란다. 법에 기대어 권력을 오·남용함으로써 사적 이익을 챙기거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한 계급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문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법조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야 하는가, 이게 과연 옳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율사 출신은 17%인 51명이었고 19대는 300명 가운데 14.3%인 43명이다. 전국 변호사 수를 고려할 때 법조계가 국회에서 500배 이상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율보다 더 중요한 문제점은 정부 고위직 등 각계의 주요 직위를 법조인들이 차지함으로써 법조 중심, 법조 편중 풍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주도하는 통치리더십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일하는 협치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법조세상 언제까지인가(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임철순 논설고문) ☞ 전문 보기
“‘(안대희 후보자는) 30년 공직 생활을 깨끗하게 마쳤잖아요. 최종 근무지에서 1년간 사건 수임을 금지하는 변호사법도 지켰고요. 자꾸 수임료를 문제 삼는데 맛있는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무슨 탈세라도 했다면 모르지만….’ 법을 어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다. 법조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법 만능주의’다. (…) 이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울타리 안에서 안 후보자도, 청와대의 법조인들도 별 쟁점이 되지 않을 거라고 결론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집단사고는 마약이다. 내부 논리에 포획되 면 사회가 자신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망각한 채 착시와 오만에 빠지게 된다. ‘법피아(법조 마피아)’란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청와대가 전관예우를 놓친 이유(5월 28일자 중앙일보 ‘시시각각’ㆍ권석천 논설위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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