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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무대서 퍼지는 생생 선율, 역사 깃든 축제에 관광객 '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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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무대서 퍼지는 생생 선율, 역사 깃든 축제에 관광객 '밀물'

입력
2014.05.3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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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원형극장 등 고대의 건축물들이 새로운 무대 공연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프랑스 오랑쥬에서 2012년 여름축제인 오랑쥬 합창제가 열렸을 때 1세기에 세워진 오랑쥬 원형극장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공연되고 있는 모습.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로마시대 원형극장 등 고대의 건축물들이 새로운 무대 공연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프랑스 오랑쥬에서 2012년 여름축제인 오랑쥬 합창제가 열렸을 때 1세기에 세워진 오랑쥬 원형극장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공연되고 있는 모습.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찬란하고 웅장한 유적을 휘감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무대를 말이다.

올 여름 이탈리아 베로나의 야외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공연을 펼친 건 이미 100년이 넘었다. 바위투성이인 이스라엘 유적지 마사두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오페라를 볼 수 있다. 지중해부터 중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대 유적지에서 역사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관광상품을 곁들인 오페라와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고대 유적과 오페라의 콜라보레이션에 전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앞다퉈 몰려들고 있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예술감독 파올로 가바제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야외에서 음악을 연주해선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별빛 아래에서 뭔가 감동을 주는 오페라라면 예외”라고 말했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로마시대 건설된 원형극장인 아레나극장에서 1913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축제다. 아레나극장은 로마시대였던 30년에 3만석 규모로 건축됐으며 현재는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곳은 수세기 동안 시장으로 사용되다가 테너 오페라 가수인 지오바니 제나텔로가 여름 오페라 축제를 제안한 1913년부터 공연장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무대인 베로나의 야외 음악축제는 거의 매년 ‘아이다’로 문을 연다. 가바제니 감독은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며 “베로나 시민들에게도 (축제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매일 밤 관객 1만~1만3,000명이 입장한다. 관객 대부분은 오페라 감상이 처음이다. 티켓은 가장 싼 게 24유로(약 3만3,000원)다.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극장 같은 실내 오페라 작품에 비하면 공짜나 다름없다. 주최 측은 매년 5~9월 1,000~1,200명을 고용한다. 극장의 음향도 아직 쓸만하다. 가바제니 감독은 “오케스트라는 벽면이나 천장에 마이크를 설치해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출연진들은 증폭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장 규모가 매우 크지만 대형 프로젝션 스크린이 없다. 그는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면 무대에서 아주 멀리 있어도 작품을 느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오페라 ‘아디아’의 경우 합창단원 160명, 엑스트라 200명, 무용수 50명이라 매 순간 400여명이 무대에 있어 당신이 어느 자리에 앉던지 그 임팩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베르디의 ‘진혼곡’을 공연할 때는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려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1세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지어진 또 다른 고대 원형극장은 ‘오랑쥬 페스티벌’을 유명하게 했다. 1869년 고대 로마의 영광을 기념하는 축제의 일환으로 프랑스 혁명기 오페라 작곡가인 에띠엔 니콜라 메윌이 만든 작품 ‘요셉’ 공연을 위해 이 원형극장을 처음 사용했다. 콘서트나 뮤지컬도 이곳의 무대에 오른다. 올해에는 제2의 파바로티로 불리는 서정적 목소리의 테러 로베르토 알라냐가 ‘오델로’를 공연한다. 티에리 마리아니 오랑쥬 페스티벌 회장은 “9,000석 규모의 고대 원형극장은 그에 걸맞게 매우 인상적인 곳”이라며 “오케스트라의 시작과 함께 분위기는 멋스럽게 바뀌어진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황제 칼리굴라가 로마에 지은 목욕탕에서도 매년 여름 축제가 열린다. 올해 공연은 지난해(9편)의 2배에 가까운 16편을 선보이고, 내년엔 24편으로 확대할 계획이란다. 새로 취임한 카를로스 포르테 로마 오페라극장 회장은 “레퍼토리를 넓히고, 로마시의 허락을 받아 무대와 좌석 규모를 확장하는 게 목표”라며 “더 넓고 나은 노천극장을 위해 음향을 개선하고 싶은데 매우 어렵다”고 했다. 역사적인 도시 로마에 216년쯤 지어진 대규모 공중목욕탕에서 올해는 ‘라 보엠’, ‘세비야의 이발사’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보기 드문 건축물과 생생한 오페라의 조합이 믿기 힘들 하루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열리는 여름 오페라 축제는 올해로 4회째다. 1985년 창립한 ‘이스라엘 오페라’가 이스라엘 사해 남서쪽 벼랑 위에 있는 고대유적 ‘마사다’에 무대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배 모양의 구릉을 이용한 자연 요새인 마사다는 70년경 유대인과 로마군이 전쟁을 벌였던 곳이다. 로마군이 승리했지만 유대인들이 끝까지 대항해서 이스라엘의 자긍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 무니츠 이스라엘 오페라 단장은 “다른 나라의 역사적인 건축물에서 열리는 전통적인 오페라 행사에 많이 따왔지만 뭔가 색다른 것이 바로 마사다”라며 “도로를 만들고, 수도관을 놓고, 전기를 공급해 7,500석 규모의 스타디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은 2008년 처음으로 마사다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공연하자고 제안했다. 나부코는 고대 바빌론 제국의 나부코왕 치하에서 유대인들의 역경을 그린 작품이다. 당국은 비용과 군사 문제 등으로 그의 제안을 거부했지만, 2년간 “이런 축제야 말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그의 설득 끝에 수락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마사다 같은 곳에서 오페라를 경험하러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음 달 12일부터 엿새간 진행되는 올해 축제에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이스라엘 팝스타 이단 라이첼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등이 무대에 오른다. 무니츠 단장은 “80톤에 달하는 장비를 사막으로 가져와 3,500㎡ 규모의 무대를 만들었다”며 “로마인들이 원형극장을 지었던 것처럼 우리도 오페라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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