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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도서 20만 권으로 채워져... 365일 24시간 개방

입력
2014.05.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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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들어서는 '지혜의 숲' 서가에는 주요 출판사와 은퇴한 학자 등이 기증한 책 20여만 권이 꽂히게 된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들어서는 '지혜의 숲' 서가에는 주요 출판사와 은퇴한 학자 등이 기증한 책 20여만 권이 꽂히게 된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첫인상은 빽빽한 죽림이면서 포도밭이다. 천장으로 쭉쭉 뻗어 올라간 서가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학자의 사상을 영글게 했던 ‘책들’이 고고하게 고개를 내민다.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지식의 낱말들을 가득 품은 저 높은 서가의 열매들은 뜻 없이 방문한 이들마저 지식에 한껏 취하도록 이끈다.

내달 19일 개관을 앞둔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문화도시 열린 도서관 ‘지혜의 숲’은 오롯이 사람이 주인인 공간을 표방한다. 파주출판문화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과 지식연수원 지지향 로비에 들어선 ‘지혜의 숲’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출판사들과 일반인들로부터 무상 기증받은 도서 20만권으로 채워진 거대한 책의 숲이다. 출판도시에 입주한 20여 출판사들이 창사 이래 출간한 전 도서를 한 권씩 기증했고 5월 현재까지 석경징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유진태 재일사학자 등 학자와 개인 26명이 소장 장서들을 ‘지혜의 숲’에 맡겼다. 이렇게 모인 책이 총 50만권으로 공간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이 가운데 20여만권이 우선적으로 연장 길이 3.1㎞의 서가에 꽂혔다. 대만 최대 출판사인 연경이 출간한 전 도서를 한 권씩 기증하기로 했고 1만여 권 기증을 약속한 재미동포도 있다. 입 소문을 타면 숨어있는 수많은 장서가들이 책을 맡겨올 것으로 보인다.‘지혜의 숲’은 지지향 건물 복도로 서가를 더 올려 나머지 책과 추가로 들어올 장서를 수납할 예정이다.

‘지혜의 숲’은 기존 도서관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24시간, 365일 문을 닫지 않는다. 비록 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대출서비스를 하지 않지만 ‘지혜의 숲’은 언제나 책을 원하는 이들에게 열려 있게 된다. 우선 지지향 연수원 1층 로비 구역(보유 장서 3만권)에 한해 24시간 운영을 시작하고 다른 서가에서도 순차적으로 이를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오직 기증 받은 책으로만 수십만 권의 장서 규모를 달성한 도서관은 ‘지혜의 숲’이 거의 유일하다.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같은 운영방식에 대해 “종이책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출판사들이 수십년 간 발행한 책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을 보면 그 출판사의 세계관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죠. 은퇴한 학자가 내놓은 장서들이 꽂인 서재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평생 연구한 학문의 길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28일 서가 공사 완료 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지혜의 숲’은 책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식생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혼재한 숲의 모습이다. 대출 서비스를 하지 않는, 완벽한 개가 도서관의 형태를 띤 탓에 이용자들을 괴롭히던 십진분류법에 따른 고전적인 서가 정리법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김원호 이사장은 “문학, 철학, 경제 등으로 서가를 나누는 도서관들의 방식은 매우 분석적이어서 오히려 이용자들의 자연스러운 독서를 못하게 막는 이유가 되곤 한다”며 “기증자 별로 책을 분류하는 ‘지혜의 숲’의 방식은 문자 미디어에서 멀어지는 젊은이들이 책에 함몰돼 마음껏 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혜의 숲’은 사서를 두지 않는 대신 권독사(勸讀司) 제도를 시행한다. 주로 은퇴한 학자나 연구자 출신의 일반인들이 맡게 되는 권독사는 ‘지혜의 숲’ 곳곳에 머물면서 이용자들에게 적당한 책을 추천하거나 책을 찾는 일을 도와준다. ‘지혜의 숲’은 30명의 초대 권독사들을 선발해 교육 중이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이들은 이용자들이 ‘지혜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김 이사장은 “권독사야 말로 ‘지혜의 숲’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이곳은 이용자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열려야 하는 장소입니다.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책을 읽을 만하면 문닫는다고 나가라 하는 것이었잖아요. ‘지혜의 숲’은 이런 아쉬움이 없는 곳이고 권독사는 책을 기증한 이들의 경험과 생각을 이용자들이 언제라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들입니다.”

‘지혜의 숲’ 관리의 상당 부분도 어쨌든 권독사의 몫이다. 수십만 권의 책과 이용자 사이엔 어떤 경계선도 놓이지 않는다. 분류표가 붙어 있지 않듯, 책에는 도난방지를 위한 태그도 부착되지 않는다. 숲에 들어와 과일을 따 먹듯, 누구나 들어와 서가에서 책을 뽑아 마음만 먹으면 그냥 ‘들고 가버리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권독사들이 기증 도서 외부유출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너무 개방된 도서관 정책 때문에 기증받은 소중한 책들이 조금씩 사라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지혜의 숲’은 “일부 책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면 개가식으로 운영하는 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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