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이름으로>는 에세이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로 세계적인 히트를 친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45)의 신작 소설이다. 그의 소설이라면 으레 칙릿 풍이려니 예상하겠지만,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 소설을 거의 완벽히 재현해낸다. 인물과 역사의 정교한 교합, 치밀한 시대적 고증, 과학 팩트들의 과감한 나열과 축적으로 한 여성과학자의 삶과 사랑을 방대한 분량 속에 성실하게 창조해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과학의 역사에서 어쩌면 다윈의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었을 허구의 여성 식물학자 앨마 휘태커. 소설은 19세기의 대부분을 살아간 이 여성 식물학자의 90여 년 생애를 영국의 빈민소년에서 미국 최호의 부호로 우뚝 선 그의 아버지 헨리 휘태커의 시대부터 촘촘하게 그려나간다. 한낱 나무가 큰 돈이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 가난하지만 담대한 소년은 약재식물 사업을 위해 신대륙을 탐험하고, 온갖 모험 끝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신분 세탁을 위해 네덜란드 중산층 가문의 박식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헨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유일한 생존 자녀인 딸 앨마를 게걸스런 지식의 포획자로 키운다.
그러나 장대한 기골에 추한 얼굴은 평생 그녀를 로맨스로부터 배제해버리고, 아름다운 용모의 프루던스가 휘태커 가문의 양녀로 입양되면서 사랑을 향한 욕구는 앨마의 유일한 결핍으로 그녀의 전 생애를 관통한다. 한 남자를 사랑한 자매, 희생과 오해로 엇갈린 운명이라는 로맨스 고유의 서사는 앨마가 평생을 투신하는 식물학과 유전학의 명제들과 유비(類比)의 관계를 구축하지만, 공들인 과학적 묘사들이 작품의 내적 활력이 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엄청난 부와 지식을 소유했음에도 추한 외모로 인해 평생을 고독했던 앨마가 한번뿐이었으나 결국 잃어버리고 만 사랑의 흔적을 찾아 타히티와 아프리카를 떠도는 여정은 이 여성주의 작가의 야심을 엿보게 한다. 지식의 향연보다는 사랑의 고통을 묘사하는 데 더 능할 것 같은데, 로맨스가 절실하지 않은 것이 의외인 동시에 아쉽다.
<모든 것의 이름으로 1, 2>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ㆍ변용란 옮김, 민음사 발행ㆍ각 권 431, 437쪽ㆍ각 권 1만3,800원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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