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열고, 수다 떨고, 웹툰도 보고
도서관의 주인은 오랫동안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만나려는 사람은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기 전 경건한 의례를 치른다. 휴대폰을 끄고, 입에 담았던 말과 음식을 내려놓고, 가방을 맡기라는 사서의 지시에 따른다. 책 내용보다 어려운 십진분류법 코드들은 도서관의 엄중함을 배가시킨다.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도서관의 이른 폐장시간은 역시 책이 도서관의 주인임을 어떤 활자보다 또렷하게 보여준다. 읽을만하면 문 닫는 도서관. 그 속에서 책 읽는 사람의 자리는 비좁기 마련이었다.
도서관이 근엄함을 벗기 시작했다. 책을 상석에 앉혔던 도서관의 오랜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 밤새 문을 여는가 하면(파주시 ‘지혜의 숲’),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수다를 내버려두고(서울 대림동 ‘언니네 도서관’), 십진분류법을 집어 던진 도서관들이 상석을 사람에게 내놓고 있다. 고고한 모습의 사서들도 뒷전으로 물러나 앉았다. 때론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공항이 되기도 하고(서울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를 칭찬하기도 한다. 쉽게 서가를 내주지 않았던 웹툰 등 대중적인 미디어에도 공간을 만들어주곤 한다(국립중앙박물관).
내달 중순 문을 여는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문화도시의 ‘지혜의 숲’은 단 한 권의 책도 돈을 주고 구입해 갖추지 않았다. 이제껏 발간한 모든 책을 1권씩 내놓은 출판사들과, 보유 장서를 통째 보내온 학자들 덕분에 이미 50만 권의 책이 오직 기증만으로 모였다. 책이 너무 많이 모여 한때 “자칫 건물 바닥이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다.
놀이와 독서의 경계는 이미 많은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서울 송파구 글마루도서관은 도심 속 정원을 콘셉트로 한다. 도서관 이용객들은 건물 옥상의 생태공원에서 여러 ‘생명’을 체험한다. 경기 성남시 중원 어린이 도서관은 그 자체로 우주공간이다. 천체망원경과 우주정거장 체험 시설이 책과 함께 어린 독자를 맞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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