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제라 겉으론 "환영" 日은 '아베 성과물' 포장 北은 한미일 균열 노려
한국과 미국은 29일 납치자 문제 재조사를 골자로 한 북한과 일본의 정부간 합의 소식에 내심 떨떠름한 표정이다. 납치자 문제가 기본적으로 인권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겉으론 환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지만, 납치자 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북일관계가 한ㆍ미ㆍ일 대북압박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탓이다.
정부 당국자는 “납치자 문제 해결은 일본 정부가 20년 넘게 공들여 온 사안인데다, 국내 정치 이슈에 해당돼 대놓고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이 납치자 문제에 매달리는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북일관계 개선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5월에는 당시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가 비밀리에 방북해 김영일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를 만난 사실이 공개됐는데, 그 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선거용 카드라는 관측이 많았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납치자 문제를 일종의 성과물로 포장하려 방북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한국에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한미는 일본의 돌출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4월엔 한미가 북일간 비밀접촉 움직임에 공개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한미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일본은 북한과의 협상을 보다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투명성을 공식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한미는 북한이 일본과 협상에 응한 이유를 한미일 대북제재의 공조 틀을 깨뜨리기 위한 전술적 차원으로 보고 있다. 북일 교섭이 한창이던 3~4월에도 북한은 4차 핵실험 발표에 이어 서해안 해상사격 훈련을 벌이는 등 대외긴장을 꾸준히 조성해 왔다. 이처럼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이 전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유화적 태도는 북한이 정세를 오판할 빌미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미의 인식이다. 실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외무성 당국자의 말을 빌려 “북한이 납치카드를 동원해 한미일의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도 한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감안해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만 해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안보와 연계된 유엔 차원의 제재가 아닌 일본이 2006년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2차 핵심험을 계기로 단행한 인적왕래 규제 등 인도적 제재만 풀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해명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지난 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굳건한 대북공조를 재확인해 놓고도 물밑에선 납치자 문제 진전대가로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저울질 해 왔다”며 “향후 북한이 무력도발의 수위를 끌어올릴 경우 일본 책임론이 더욱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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