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서울지하철3호선 도곡역으로 진입하던 전동차에서 법원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승객이 불을 질렀다. 이 승객은 미리 준비해온 시너 11통을 열어 바닥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의자로 옮겨 붙었다. 전동차에 타고 있던 승객 50여명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여기까지는 2003년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와 상황이 흡사하다.
그러나 불이 난 후 대처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 기관사는 종합사령실에 보고도 않고 달아났고, 사령실은 뒤늦게 화재 경보를 확인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도곡역 화재의 경우 때마침 전동차에 타고 있던 서울메트로 매봉역 역무원 권순중씨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승객들에게 비상벨을 눌러 기관사에 알리도록 하고 주변의 소화기를 받아 진화에 나섰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승객들도 권씨의 모습을 보고 소화기를 건네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화재 사실을 전달받은 기관사는 곧바로 사령실에 알렸고 열차를 승강장에 멈춘 뒤 급히 전동차 문을 열어 400여명의 승객을 무사히 대피시켰다. 안내방송을 통해 대피경로를 자세히 안내하기도 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했던 방화 사건이 안전 매뉴얼을 숙지한 지하철 역무원들의 재빠른 대응과 시민들의 협조로 초기에 진화될 수 있었다. 여기에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보강된 불연ㆍ난연성 소재 덕분에 객차 전체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생히 일깨워준 사례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 이어 서울지하철 추돌 사고, 고양터미널 화재 사고, 장성 요양병원 방화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꼬리를 물고 있는 대형 사고의 공통점은 원칙과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중이용시설 관리자는 원칙과 규정에 맞게 안전시설을 갖추고 매뉴얼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시민들도 재난과 대형 사고 시 행동요령이 몸에 밸 수 있도록 스스로 익혀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