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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장은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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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장은 재미없다

입력
2014.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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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20여 년이 넘게 영화 일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부탁을 많이 받는다. 고교, 대학동창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00 배우가 정말 예쁘냐?”, “00 배우는 정말 얼굴이 CD보다 작으냐” 등등 여배우들의 미모에 대한 궁금증이 대부분이고 술이 한 순배 돌기라도 하면“야 예쁜 여배우들은 뭘 먹느냐? 정말 이슬로 먹고 사느냐”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발전한다. 가끔 부부동반모임이라도 있으면 아내 친구들이나 내 친구의 부인들이 다 내 옆으로 와서는 “정말 00 배우랑 XX 배우가 사귀나요?”하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난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에이! 영화제작자가 배우들이 사귀고 이러는 걸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하며 추궁하듯이 물어보면 난 “어떤 배우도 자기들이 사귈 때 저하고 상의하는 배우가 없어서 정말 모릅니다”라고 대답한다. 솔직히 나랑 작업한 배우들은 연애를 할 것 같으면 나와 좀 상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지만 아무도 나와 상의하지 않는다.

아주 친한 친구들이나 업무관계자들은 내가 영화를 촬영하고 있으면 꼭 자기 자녀들과 영화촬영현장을 견학하길 원한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카메라와 많은 스텝들 앞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본다는 걸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동창 친구들은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우리 애들 앞에서 아빠의 권위(?) 좀 세워주라”면서 거절할 수 없을 만큼 애절하게 촬영장 견학을 청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영화촬영현장이 재미있지 않다, 그리고 아주 지루하다, 그 이유는 한 장면 한 장면 카메라를 맞추고 조명을 설치하고 준비해야 하기에, 하루에 실제로 촬영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되고 나머지는 수많은 스텝들이 준비하는 것만 봐야 한다”고 사실을 말해줘도 괜찮다고 자기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면서 견학을 원한다. 그러면 난 촬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아주 소수 인원만 초대해서 영화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까지 촬영현장을 재미있어한 친구들은 한 명도 못 봤다. 처음엔 배우들을 보는 게 신기하고 스텝들이 카메라를 들고 조명기를 들고 또는 색다른 장비들을 세팅하고 사용하는 걸 재미있게 바라보다가 한 두어 시간이 지나가면서부터 서서히 몸이 꼬이고 하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온 친구들은 점심도 되기 전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촬영장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럴 때마다 난 웃으면서 그들을 배웅한다.

촬영장을 떠나면서 친구들이 하는 말은 이구동성으로 “야, 영화라는 게 정말 별거 없네, 난 막 재미있고 신기하고 대단할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이다.”하면서 떠난다. 난 실망하고 떠나는 친구에게 꼭 오늘 장면을 잘 기억했다가 영화가 만들어지면 극장에서 그 장면을 찾아보라고 당부를 하며 친구를 보낸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촬영장을 찾아온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 모두들 신기하다는 듯이 “야, 내가 촬영장에서 볼 때 진짜 별로였는데 극장에서 보니까 대단한 장면이 나오던데 그게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려서 그리된 거냐?”하면서 궁금해한다.

영화라는 게 촬영을 하고 편집과정을 통해서 감정을 불어넣고 거기에 음향효과, 음악, 컴퓨터 그래픽 등이 덧칠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과정을 상상할 수도 없기에 자신의 눈으로 본 촬영현장의 모습이 지루하고 별거 없고 아무것도 아니게 느낀 것이다.

이런 일이 과연 영화현장에서만의 일일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을 우리가 단편적으로 바라보면서 시시하네, 가치 없네, 별거 없다고 폄하하고 매도하고 단정 짓는 일이 살아가면서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판단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특히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보면서 그들의 꿈과 노력을 지켜봐 주기는커녕 보이는 단면만 보고 비판하고 질책하고,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그들의 꿈이 어떻게 편집되고 어떻게 완성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명 여배우들은 정말 이슬만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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