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원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물론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맥상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관피아로 상징되는 관료들 간의 끼리끼리 문화, 정부 기관과 관련 기관 및 업체 간의 사바사바(뒷거래) 문화의 일그러진 모습이 수면 위로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다. 우리 언론의 모습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보도에 대한 방송사 내부의 자성 목소리는 지난 7일 KBS 신입 기자들에 의해 촉발됐다. KBS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을 통해 신입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 취재와 관련해 자신들을 기레기로 지칭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했다. 정부로부터 제공된 정보를 별다른 검증 없이 받아쓰는 속보 경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보가 발생했고, 대통령 눈치 보기와 정권이나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누락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비롯한 각종 주요 현안들에 대한 보도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에 적지 않게 실망해 온 시청자들에게 KBS 신입 기자들의 반성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해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했던 보도국장이 KBS 사장과 청와대가 KBS 보도와 인사에 체계적으로 개입해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 발전의 척도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공영방송사에 대한 정치권력 개입과 내부 최고 경영진의 자발적 협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국민 정서의 문제도, 정파성 문제도 아니다. 정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고, 권력과 야합해 부정과 비리는 물론, 권력의 무능과 나태를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언론 본연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환영 KBS 사장은 청와대 외압설과 보도 독립성 침해 주장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보도국장의 배신과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 신입 기자들의 반성문 발표와 보도국장의 외압 폭로, 그리고 언론사 노조 내의 일부 좌파 세력의 선동이 내부 보직자들 사퇴는 물론, 학계와 각계각층의 비난 목소리를 불러일으킨 주요 원인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거 정권에서도 ‘친정권 편파방송’이라는 꼬리표는 늘 붙어 다녔다는 역사적 맥락을 차치하고서라도 인사와 예산에 대한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방송사 내의 최고 경영진의 의견을 내부 구성원들이 배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인선한 최고 경영진에 의해 각종 인사 파생과 함께 노조가 와해되고, 그 결과 MBC의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한 전례도 있었다. 청와대와 KBS 최고 경영진의 보도 개입 의혹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주장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를 좌파 노조의 방송 장악 의도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처를 주장하는 모양새도 과거 MBC 사태와 그대로 닮아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뉴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KBS 최고경영자의 해명이다. 현재의 KBS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부상한 이면에는 언론에 대한 무지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공영방송사 사장을 선임하도록 한 인선 시스템과 이를 가능케 해준 현행 지배 구조의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방송 저널리즘이 담당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공영 방송 저널리즘이 정부에 대한 견제와 비판적 보도 태도라는 언론 본연의 자세를 도외시한 채 정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언론이 되는 순간,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물론, 내부 구성원들로부터도 지지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사 최고 경영진은 정부가 아닌 국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론 가치관 확립이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드러났다.‘기다리래’가 빚어낸 세월호 비극, 더 이상 방송 저널리즘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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