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여명 희생당한 사고 시신 173구 DNA 조사 중
250명은 아직 찾지도 못해 보상 늦어 유족들 심한 생활고
아동 착취 불법행위도 성행 재하청 4000여곳 숨은 폭탄
월급 7만원 받으며 고강도 노동 오늘도 수백만명 고난의 출근길
2013년 4월24일 아침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사바르 의류공단. 남편과 함께 빌딩형 공장 라나플라자로 출근한 재봉사 마흐무다 아흐터(20)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친정에 맡긴 젖먹이 딸이 눈에 밟혔다. 동료들도 일터로 통하는 옥외 계단에 오르길 주저했다. 이 8층 건물은 전날 관청의 안전점검에서 기둥 세 군데가 갈라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입주 공장 5곳의 노동자 3,000여명 전원에겐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그날 밤 회사는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재검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이 나왔다”는 믿기 힘든 이유를 대며 정상출근을 종용했다. 거부할라치면 밀린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이 폭언과 함께 들이닥쳤다. 봉급의 절반쯤 되는 수당을 받아야만 생계를 겨우 꾸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겐 강제구인과 다름없었다. 시간당 120벌의 바지 주머니를 꿰매면서 주 6일, 연 50주를 일해온 마흐무다의 당시 연봉은 8만다카(126만원)에 불과했다.
마흐무다가 4층 공장에서 바지 두세 벌을 꿰맸을 때 전동 재봉틀이 멈췄다. 전력 부족 국가 방글라데시에서 정전은 흔한 일이지만 이날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발전기가 가동되자 금이 간 기둥은 그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굉음과 함께 무너졌다. 노동자들이 좁다란 출구로 몰려드는 동안 건물은 급격히 기울고 갈라졌다. 마흐무다는 재봉틀 밑으로 피신했다가 필사적으로 탈출했지만 다른 층에서 일하던 남편은 재난을 피하지 못하고 며칠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8개월 뒤 마흐무다는 라나플라자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공장에 재취업했다. 고향에 남편을 묻고 다시는 다카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어린 딸과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남편을 앗아간 옛 일터의 잔해를 지나치는 출근길마다 “빌딩 하나가 무너졌다고 모두 다 무너지는 건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두렵지 않아요. 내가 무서워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요.”
의류산업 사상 최악의 참사
지난달로 1년을 맞은 라나플라자 붕괴 참사는 ‘세계 의류공장’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최빈국에 대한 무관세 혜택이 본격 적용된 2004년 이후 급팽창했다. 의류기업들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 기존 하청국가보다 인건비가 훨씬 낮은 방글라데시에 주문을 쏟아냈다.
디자인ㆍ생산ㆍ유통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계절이 아닌 주 단위로 저가 신상품을 공급하는 ‘패스트패션’의 호황과 맞물려 2004년 공장 4,000개, 노동자 200만명이던 이 나라 의류산업 규모는 지난해 공장 5,600개, 노동자 40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출액도 60억달러에서 210억달러로 늘어 중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수도 다카에 공장 세울 땅이 부족하자 공장주들은 사바르, 가지푸르, 아슐리아 등 교외로 진출했다. 서둘러 메운 습지 위에 값싼 철근과 시멘트로 건물이 올라갔다. 안전규정 미비, 정경유착의 결과물인 부실공사로 2005년 사바르, 이듬해 다카에서 잇따른 공장 붕괴 사고가 나 85명이 숨졌다. 그리고 7년 뒤 라나플라자 붕괴로 무려 1,138명이 죽고 2,500여명이 다치는 참사로까지 이어졌다. 무너지지 않은 공장에서는 이 기간 동안 노동자 600명이 화재로 숨졌고 아동 노동, 임금 체불, 욕설과 폭행 등 비인간적 불법이 판쳤다. 인권ㆍ노동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나서야 미국 유럽 등의 원청업체들은 근로환경 점검에 나섰지만 공장 건물의 안전도 살펴야 한다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라나플라자 참사 직후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자 수십만명은 거리로 나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의류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은 3,000다카(4만원)로 건설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미국이 무관세 혜택 제공을 잠정 중단하고 방글라데시산 의류 최대 수입처인 유럽연합(EU) 역시 무역 제재를 검토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도 이어졌다. 노동자 시위에 강경대응하던 방글라데시 정부는 지난해 7월 노조 설립 자유화를 골자로 노동법을 개정했다. 12월엔 의류산업 최저임금을 5,300다카(7만원)로 올렸다. 방글라데시의 최저임금 인상 시위는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로 확산됐다.
원청업체에 맡겨진 안전점검
비난의 표적이 된 글로벌 의류ㆍ유통기업들은 서둘러 방글라데시 하청업체를 상대로 대대적인 안전점검에 나섰다. 자라, H&M, 까르푸, 망고 등 유럽 위주의 150여 업체는 국제노동기구(ILO), 현지 노조와 협의해 만든 ‘방글라데시 화재 및 건물 안전 협정’(어코드)을 근거로 공장 1,500곳을 조사하고 있다. 월마트, 갭 등 어코드 참여를 거부한 미국 캐나다 기업 26곳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안전 연합’(얼라이언스)를 결성하고 630곳을 점검 중이다. 이들 업체에서 일감을 받지 않는 나머지 공장들은 방글라데시 정부 소관이다.
오는 10월 말 완료를 목표로 2월 중순부터 점검에 나선 어코드는 지난해 11월 마련한 안전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고층(높이 23m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작업장과 비상계단 사이에 방화문을 만들며 화재경보기 설치를 의무로 하는 등 현지 규정보다 엄격한 수준이다. 공장 사정에 밝은 노조와 협력하고 있는 어코드는 업계와 유착이 만연한 현지 공무원들을 배제하고 외국 기술자들을 현장 투입했다. 어코드는 법적 구속력이 있어 기준에 미달한 공장에 폐쇄 및 환경 개선을 강제할 수 있다. 대신 어코드 소속 기업들은 환경 개선 비용을 분담하고 강제 조치를 이행한 공장과 최소 2년 동안 거래를 유지해야 한다. 지난달 중순까지 조사가 완료된 공장 300곳 중 8곳이 전면 또는 부분 폐쇄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어코드의 엄격한 점검 활동을 두고 현지 공장주나 당국 사이에서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온다고 전했다.
얼라이언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장 400곳의 점검을 끝낸 지난달 현재 폐쇄는 한 건에 그쳤다. 어코드 소속 시민감시기구 노동자권리연합의 스콧 노바 이사는 “얼라이언스의 점검 결과 중 다수는 월마트가 예전에 진행한 안전점검의 재판”이라며 “월마트가 건물 안전에 B등급을 줬던 공장은 어코드 조사 결과 층마다 쌓인 원단과 지붕 아래 물탱크를 당장 치워야 하는 심각한 과부하 상태였다”고 꼬집었다. 명예훼손 피소 우려 등을 이유로 조사 결과 공개를 꺼리는 점도 어코드와 대조적이다. 안전에 문제가 있는 공장과는 거래하지 않겠지만 시설 개선에 투자할 계획도 없다는 것이 얼라이언스의 생각이다. 법적 책임에 휘말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인데 얼라이언스 회원사들이 어코드 불참을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렇다고 어코드의 공장 개선 조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공장 8곳 폐쇄로 노동자 1만1,500명이 생산 활동을 중단했지만 어코드는 이들에 대한 급여지급 의무를 공장주에게 떠넘기고 있다. 공장주와 절반씩 급여를 부담하도록 500만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 얼라이언스가 어코드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총 30억달러로 추산되는 공장 개선 비용 분담을 약속하고도 출자 규모를 여태 확정하지 못해 공장 폐쇄가 장기화되고 있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일부 어코드 회원사가 환경 개선 공장과 거래 의무화에 따른 부담을 피하려고 발주량을 줄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가에 차이는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팔을 걷고 나서면서 방글라데시의 노동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ILO는 “현지 의류노동자 420만명 중 4분의 1이 안전한 작업장에서 일하게 됐다”며 성과를 인정했다. 다라 오루케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의류 소비자의 여론을 의식하는 어코드-얼라이언스의 경쟁 구도가 현지 의류산업의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원청업체가 주도하는 안전강화 조치로는 근본적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제2의 라나플라자가 될 수 있는 시한폭탄은 해외 의류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현지 업체로부터 수주하는 재하청업체라는 것이다.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은 지난달 발표한 실태보고서에서 5,000~6,000개로 추산되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중 최악의 노동환경은 어코드ㆍ얼라이언스가 점검하는 2,000여 곳이 아니라 재하청업체가 주종인 나머지 공장 쪽이라고 지적했다. 잦은 정전, 열악한 교통망 탓에 납기일 준수에 애를 먹는 하청업체의 편의, 재하청 금지 방침만 내세우며 현장 상황에 눈감는 원청업체의 이중성이 맞물린 결과다. 책임연구자인 사라 라보위츠 교수는 함석 창고로 위장된 재하청 의류공장에 아동을 포함한 110명이 감금된 채 유럽의 유명 브랜드 상품을 만드는 현장을 증언하며 “라나플라자 참사 1년이 지났어도 열악한 무허가업체들이 건재하다”고 말했다.
더딘 보상, 아물지 않는 상처
무너진 8층 건물 잔해에서 수습된 시신은 모두 1,135구. 이 가운데 참사 1년인 지난달 25일 현재 962구가 가족에 인계됐고 173구는 여전히 확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방글라데시에서 DNA검사가 가능한 법의학 기관이 한 곳뿐이어서 여지껏 ‘검사 대기’ 상태인 것이다. 이 답답한 과정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은 250명에 달하는 실종자 가족들이다. 끝내 발견되지 못한 시신들은 철근과 시멘트, 옷감들이 뒤엉킨 채로 방치돼 있는 건물 잔해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국의 뒤떨어진 유전자 감식 기술을 고려할 때 남의 가족이 장례를 치른 시신이 상당수일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망자의 주검이라도 확인하겠다는 간절한 바람도 이루지 못하는 가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최소 36명은 수족을 절단해야만 했다. 재앙이 남긴 정신적 상처도 문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와 인터뷰한 알람지르 후세인(27)은 퇴원 후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한 곳에서 넉 달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고 한다. “화재경보가 울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게 된다. 작은 소리라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미쳤다고 여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경제적 곤란이다. 네 자녀의 엄마인 라베야 베굼(35)은 병원에 장기 입원하다가 지난해 12월 두 다리를 절단했다. 뒤늦게 절단수술을 받는 바람에 190달러의 월수입이 보장되는 채권 수령 시기를 놓친 베굼의 가족은 채권 대신 받은 4,500달러가 점차 바닥나는 것을 망연히 지켜보고 있다. “남편도 나를 간병하느라 일을 못하고 있다. 수중에 남은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ILO가 주도하고 라나플라자 원청업체와 방글라데시 정부, 사용자 단체, 노조가 참여한 ‘라나플라자협약 신탁기금’은 진통 끝에 사고가 나고 수개월 뒤인 지난 1월 말에야 설립됐다. 피해자 및 유족을 상대로 3월말까지 신청을 받아 보상금 지급 대상 3,600여명을 확정했지만 문제는 신탁기금이 목표액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ILO가 사고 피해에 따른 임금손실, 의료비 부담을 국제 기준에 맞게 산정한 기금 규모는 4,000만달러(410억원). 지난달 말 현재 출연금은 1,690만달러(42.3%)에 불과하다. 그마저 라나플라자 입주공장과 거래했던 영국기업 프리마크의 출연분이 800만달러로 절반을 차지한다.
신탁기금측이 라나플라자와 거래했다고 판단한 29개 기업 중 15곳이 거래 사실을 부인하며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 의류공장주 모임 ‘방글라데시 의류생산 및 수출업자협회’는 “자체적으로 피해자 보상을 할 만큼 했다”며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신탁기금은 지난달 22일 대상자 전원에게 5만다카(66만원)씩 일괄지급하며 처음 보상을 했지만 향후 7, 8개월 내 보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라나플라자 참사를 겪고도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순항하고 있다. 2013-2014회계연도가 시작된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동안 의류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 상승했다. 이런 추세라면 직전 회계연도보다 30억달러 많은 245억달러 수출 목표 달성이 무난하다. 계속되는 의류산업의 호황은 유럽 미국을 위시한 해외 의류기업들이 방글라데시를 떠나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이 나라의 인건비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방글라데시는 국민 400만명이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또 다른 400만명이 의류산업 관련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 800만명이 가족 다섯 명씩 부양한다고 가정하면 국민 6명 중 1명이 의류산업 덕에 생계를 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류산업은 또한 총수출의 78.6%, 국내총생산(GDP)의 34.6%(이상 2012년 현재)를 책임지는 국부의 원천이다. 의류산업이 흥해야 국민이 흥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그 구조는 동시에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참사 이후 근로환경 개선 노력으로 이런 야만이 충분히 걷힐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목숨을 위협하는 공장, 상사의 거친 언사, 7만원에 불과한 월급과 연 300일의 고강도 노동에 짓눌리면서도 수백만 ‘마흐무다’들은 출근 행렬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라나플라자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9,900원짜리 티셔츠가 만들어지는 사정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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