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기술의 도전을 받고 있을 뿐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그룹인 ‘엘스비어’의 지영석(53) 회장은 26일 한양대 산학협력단 주최로 한양대 세미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우리의 경쟁자는 다른 출판사가 아니라 콘텐츠와 기술력을 모두 가지고 출판 시장을 잠식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이라며 “출판사는 콘텐츠와 IT테크놀로지에 모두에 능한 ‘양손잡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 2,000종의 저널과 의학 과학 전문 서적을 출간하는 엘스비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24개국 지사에 7,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연 매출은 3조5,000억원 규모로 출판계 최대를 자랑한다.
지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출판업계의 미래는 밝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 출판 시장은 2008년 130억달러(약13조원) 규모에서 2012년 15억달러(약15조원)로 성장했고, 세계 출판 시장은 1,050억 유로(약 140조원)에 달한다”며 “출판 시장은 영화 신문 음악 시장보다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 회장은 다만 “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이를 평가하고 보다 쉽게 전달하는 IT 기술이 필요하다”며 “이미 엘스비어에는 편집자보다 IT테크놀로지 인력이 더 많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가 출간한 의학 논문을 본 의사들이 30% 더 많은 환자를 살렸다는 구체적 데이터를 갖추는 등 콘텐츠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엘스비어 콘텐츠의 3분의 2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이 연관 검색어를 쉽게 찾고 저자에게 이메일로 책 내용을 묻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 회장은 지성구 전 핀란드 주재 대사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과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남모를 어려움도 많았다. 그는 “아버지 직업 때문에 15세 이후로 해마다 나라를 옮겨 다녀 매년 친구를 잃어야 했다”며 “MBA를 졸업하고도 미국 영주권이 없어 300개 이상의 회사 설명회에 다니고 80개 회사에 직접 이력서를 써 보내 겨우 한곳에 취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 회장은 금융회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고경영자(CEO)의 비서로 이력을 시작해 30세가 되던 1992년 세계 최대의 출판그룹 브루손 잉그램으로 자리를 옮겨 5년 후 세계 최초의 ‘주문형 출판(POD)’을 선보인 자회사 ‘라이트닝 소스’를 세웠다. 2001년에는 세계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회장이 돼 ‘다빈치 코드’를 출판해 흥행에 성공시켰다. 2006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3년 후 엘스비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어 출판인의 권리 보호와 출판ㆍ표현의 자유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인 세계출판협회(IPO) 회장직도 맡아 명실상부한 출판계의 ‘거목’으로 활동 중이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지 마라. 눈앞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 두려움 없이 기회를 잡아라.” 강연 말미 그가 대학생들에게 남긴 이 조언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도전적인 삶을 웅변하는 듯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