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책임총리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현 시국의 엄중함 때문에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의 총리 모습을 기대한다는 비판도 있다. 과연 책임총리가 국가 개조를 위한 대국민 신뢰회복의 상징이 될지, 아니면 국면 전환을 위한 대국민 선전활동의 상징이 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의혹 제기와 형식적 답변만 오가는 청문회를 거쳐 불도저식으로 총리를 임명한다면 시작부터 불통이니 소통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 정서에 부합되는 청문회를 통과해 임명될 수 있는 책임총리라면 누구든 그의 성공을 기원할 것이다. 이런 책임총리에게 요구되는 필수 과제 중 하나가 소통이다. 역대 총리들이 취임 때마다 다짐하고 퇴임 이후 공통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자신만의 소통방식을 고집해 국민과 교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전임 총리들의 한계인식은 한결같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책임총리는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 신설 등 가시적인 총리실의 위상 강화 및 해당 조직의 인사 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후 실천해야 할 소통과제는 두 가지 존재감의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하나는 총리실 내 정부 대변인의 존재감을 살려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총리 주재 국무회의의 존재감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이는 총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통 정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반복되어 온 비판으로부터 정부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는 국정홍보처가 정부 대변기구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여론 중재와 부처 간 의견 조율기능을 수행했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과 비판도 많았지만 급변하는 매체환경과 그 속에서 조성되는 여론의 역동성을 고려할 때 정부 내 소통 전문가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홍보처를 폐지했고 이번 정부에선 특임장관실마저 사라졌다. 그 결과 소통의 단일 창구로써 정부를 대변하는 역할 조정과 여론 수렴 기능이 사실상 청와대로 쏠리게 됐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가 대국민 홍보 창구로 오해를 받고 청와대 대변인이 정부 대변인으로 오인되면서 부정적인 측면만 드러냈다.
정부 소통은 국민이 갖는 의구심을 줄이고 동질감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그것을 목적으로 한 소통이 오히려 설득의 역효과만 초래했다. 개별 부처 홍보조직과 대변인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소통과제가 쌓여 있는데 청와대가 이 모든 소통을 조정하면서 최종 전달자인 정부 대변인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직전 정부 대변인의 역할이 대폭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이 목격한 것은 지난해 말 문체부 장관이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사실상 정부 대변인의 존재감이 미미한 현시점에서 범정부 차원의 소통과제 해결을 위해 총리가 나서 소통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여론을 제대로 파악해 직언 총리라는 역할 수행도 가능해질 수 있다.
더불어 총리 주재의 국무회의에 새로운 소통 문화를 조성해 내야 한다. 관행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만, 국무회의에서 총리의 보충발언도 빈번히 목격되고 장관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도 가끔은 국민이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 결과는 자연스러운 정책의 배경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장관들에게 덧씌워진 받아적기 국무위원이라는 오명도 벗겨 주고 책임 장관이 공허한 약속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책임총리가 지향해야 할 소통 자세는 두 가지다. 총리가 나선다는 말을 무시하고 장관과 토론하며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자세, 정책 현장에서 국민과 대화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이벤트성 현장 순시보다 암행 스타일의 민생 관찰을 실천하고 국민과의 사진촬영보다는 큰따옴표 안에 현장에서 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 일일이 공유하는 소통을 권한다. 이런 모습이 누구도 가보지 않은 대한민국 책임총리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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