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후난.’(先易後難ㆍ 쉬운 것을 먼저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논의한다)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간 대화와 교류 협력 제1원칙이다.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란 총론에선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중국은 베이징이, 대만은 타이뻬이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른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ㆍ 하나의 국가 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공존한다는 것)와 대만의 일국양구(一國兩區ㆍ중국은 하나지만 대륙지구와 대만지구로 나눠 각자 대등한 정치 실체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정책이다.
타협이 불가능할 것 같은 국체(國體)를 둘러싼 수사(修辭)지만 ‘선이후난’ 한마디로 팽팽한 긴장감은 눈 녹 듯 사라진다. 하나의 중국, 종착역이 어디인지 간에 양안간 교류 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북한이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세월호 대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도 즉각 화답했다. 주무부처 통일부와 인천시,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반색했다. 북한의 참가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소속 45개 회원국 모두가 참가하는 100% 인천 아시안게임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남은 과제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모처럼 감도는 해빙무드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남북한 스포츠 교류는 정치적 효용가치에 따라 냉ㆍ온탕을 넘나들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올림픽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공동 응원 등 면면히 이어오던 스포츠 분야 협력은 2008년 MB정부 출범과 함께 일체 중단됐다. 그 정점에 모든 남북한 교류의 손발을 묶어놓은 MB정부의 5.24조치가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 때 한국 선수단을 초청하면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는 등 적어도 스포츠에서만큼 이념을 분리해놓고 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 선언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스포츠는 조지프 나이의 분류에 따르면 소프트 파워(연성권력)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복원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핑퐁외교가 대표적이다.
남북한이 스포츠에서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관계를 지속시켜 나간다면 제2의 핑퐁외교를 기대할 만 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은 차라리 보너스에 가깝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릴레이 마라톤 어깨 끈을 건네주고 받는 장면을 연출하면 ‘게임 끝’이다. 여기에 반기문 사무총장의 유엔산하 스포츠개발평화사무국(UNOSDP)이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콘셉트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 릴레이 마라톤이다. 박 대통령의 핵심과제 유라시아 철길 개통과 궁합이 맞지 않는가. 러시아가 지난달 북한이 진 빚 100억달러를 탕감해 준 속내도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가스관과 철도 연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노벨 평화상은 최근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받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 2012년에는 유럽연합(EU)이 수상했다. EU가 지역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는 화학무기 금지기구(OPCW)가 수상단체로 선정됐다. 올해에도 유력 인물은 보이지 않고 대신 일본평화헌법이 후보에 올랐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세계여론은 “오바마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는 특히 지난해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은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노벨위원회에서도 만약 남북한 최고 지도자가 세계평화를 기치로내건 어깨 끈을 두르고 화합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쾌재를 부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선이후난’ 4자성어는 청와대 집무실 벽, 노른자위에 걸려 있어야 한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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