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정면사진 vs 격식을 깬 측후면 사진, 6.4지방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박원순 두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벽보부터 대조적이다. 선거벽보가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선거부터 지난 대선까지 중앙선관위 선거정보도서관에 공개된 벽보 중 5,000여장을 분석했다.
60년대 문맹률 높아 작대기 기호
1960년대 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곤 대중집회와 선거벽보가 전부였다. 특히,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정견이 깨알같이 적힌 선거벽보를 읽어 내려가며 선택할 후보를 저울질 했다. 한자와 한글이 뒤섞이고 사진 크기나 규격도 제 각각이었던 당시 선거벽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대기 기호다. 아직 문맹률이 높았던 탓에 기호 3번은 작대기 셋, 기호 11번은 작대기 열한 개 식으로 표시했다.
73~83년 천편일률적 형식
후보의 사진은 왼쪽 상단, 기호와 이름은 오른쪽, 아래에는 약력과 정견이 자리잡은 것은 유신 선포 직후인 1973년 제9대 총선부터였다. 간혹 눈에 띄던 파랑 노랑 빨강의 원색 벽보는 이때부터 자취를 감췄다. 벽보의 천편일률적인 형식은 통제와 억압이 일상이었던 당시 시대상을 대변하듯 신군부 집권기인 1985년 12대 총선까지 유지되었다.
90년대 정당별 기호와 색 도입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진 13대 총선에서는 경직되었던 틀이 허물어지면서 정당 별 기호와 상징 색이 도입된다. 예를 들면 민정당은 기호1번이면서 파랑색, 통일민주는 2번에 빨강, 평화민주 3번 노랑식이다.
90년대 중반 컬러 벽보 본격 등장
컬러사진은 1987년 대선 벽보에서 처음 등장한 후 1995년 1회 전국시도지사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클래식부터 팝아트까지 다양해진 21세기 디자인
200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틀을 깨는 톡톡 튀는 벽보 디자인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QR코드도 등장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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