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병원·카자흐스탄 간
브랜드 수출 계약도 없던 일로
러시아 의사 유급연수 협약 등
일부 병원만 성과 거둬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의료 수출이 실제로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의료계에서 “의료 수출을 성급하게 추진했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파드 왕립병원과 향후 10년 동안 기술 이전을 포함한 연구협력을 추진키로 협약했다고 발표했다. 협약의 핵심 내용은 실험쥐(아바타 마우스) 테스트를 통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 사우디에 이전하고 이를 위한 기반시설(뇌조직은행)도 함께 구축하기로 한 것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 사실을 발표하면서 “본계약을 연내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금껏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관계자는 “사우디 측이 여러 이유를 대며 본계약을 자꾸 미루고 있다”며 “본계약이 언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의 이 계획은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쌍둥이 프로젝트’의 첫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쌍둥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해외 국가나 병원에 그대로 이전하는 계획이다. 삼성서울병원이 킹파드 왕립병원 협약 건을 발표할 당시 복지부는 한국 의료시스템을 사우디에 전수하고 사우디 전역 보건소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사우디 의사들을 한국에서 유료로 연수시키는 협약도 체결했다고 밝혔었다. 당시 한 국책연구기관은 사우디와의 의료 협력이 소나타 4만대 수출(3조4,000억원 규모)과 비슷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쌍둥이 프로젝트는 한국 연수에 참가할 사우디 의사를 모집하는 것 말고는 제대로 이행되는 것이 없다. 복지부의 관계자는 “사우디 측이 예산 부족과 법적 문제 등을 내세우며 (쌍둥이 프로젝트의 이행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 이어 길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수출 등 다른 형태의 의료 수출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종병원은 카자흐스탄이 짓는 병원에 ‘세종’이라는 이름을 빌려주고 의술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조건으로 연 50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받기로 했으나 없던 일이 될 위기에 놓였다. 세종병원의 관계자는 “카자흐스탄 측이 자금 문제로 병원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계약에 기한을 명시하지 않아 실제 계약대로 될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새로 짓거나 현지의 기존 병원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에 진출하려던 한 대형 병원은 현지에서 국산 화장품을 팔며 2년째 버티는 중이다. 화장품 판매로 현지 직원의 인건비를 대면서 러시아 측과 신경전을 하고 있다.
한국의료수출협회는 실제로 성과를 내는 수출 사례가 극히 적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료계의 한 인사는 “실속 없이 폼만 재려다 빚어진 결과”라며 “계약대로 시행돼 돈이 실제로 오가기 전에 번지르르하게 포장해 발표부터 했다”고 비판했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러시아 모스크바 보건국과 맺은 협약에 따라 러시아 의사 23명을 데려와 유료로 교육시켰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러시아 의사 연수비용으로 약 1억원의 수익을 얻었다”며 “올해 말까지 러시아 의사 250명이 연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유급 연수 프로그램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보바스기념병원은 두바이 국립재활센터를 2년째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2012년 계약 당시의 예상 수입(4년 200억원 규모)보다는 적지만 기술자문과 경영컨설팅, 의료진 파견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이와 관련, 서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쌍둥이 프로젝트처럼 한국의 의술이나 의료시스템 전체를 이전하는 플랜트 수출이 의료 수출의 가장 좋은 모델”이라며 “정부가 의료 수출을 드라이브하는데 분명한 전략이나 시각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불확실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우리도 한번 해볼까”라며 섣불리 발을 담근 것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박성민 늘푸른의료재단(보바스기념병원) 이사장은 “올해와 내년이 한국 의료수출의 성장과 정체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