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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위해 방화셔터 철거한 채 공사... 제연시설도 작동 안 해

입력
2014.05.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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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소방대원들이 26일 오전 화재가 발생해 시커멓게 그을린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고양=김주성기자 poem@hk.co.kr
119 소방대원들이 26일 오전 화재가 발생해 시커멓게 그을린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고양=김주성기자 poem@hk.co.kr

도시가스 주배관 밸브 안 잠근 상태서 용접

지하 유독가스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져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는 20여분 만에 진화됐지만 무려 61명의 사상자를 냈다. 개장한지 2년밖에 안 된 최신 건물에 방화시설 설치와 관리가 엄격한 대규모 다중이용시설이란 점이 무색할 정도의 참사였다.

이번 화재 역시 세월호 침몰과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처럼 평소 안전관리 소홀과 순간의 부주의가 빚은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특히 이 건물에는 버스터미널뿐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형 마트 등이 입점해 있어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대였다면 더 큰 참사를 부를 뻔했다.

또 용접에서 시작된 비극

이날 화재는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 식당가를 위탁 운영하는 CJ푸드빌이 재임대한 매장 중 한 곳에서 인테리어 공사와 도시가스(LNG) 중간 밸브 설치를 위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일어났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도시가스 주배관 밸브를 잠그지 않은 상태에서 용접을 하다 불티가 새어 나온 가스에 튀며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에 사용하는 스티로폼 등 주변에 있던 가연물에 불이 옮겨 붙으며 유독가스를 뿜어냈을 것이란 추정이다. 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도 경찰 조사에서 “가스 밸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주의한 용접 작업은 그간 무수한 화재를 일으켰다. 무려 40명이 숨진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창고 안에 가득 차 있던 유증기가 용접 작업 중 폭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2004년 12월 인천 재능대 체육관 화재(2명 사망ㆍ2명 부상),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6명 사망ㆍ1명 실종), 2013년 구로디지털단지 신축건물 화재(2명 사망ㆍ9명 부상) 등 용접으로 인한 대형 화재는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소방방재청이 집계한 지난해 발생 화재 4만932건 중 부주의한 용접ㆍ절단ㆍ연마 작업으로 인한 화재는 1,017건이나 된다. 올해도 4월 말까지 402건의 화재가 용접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은 “주변 가연물 제거와 소화기 휴대 등 용접 작업 안전수칙이 있어도 중소 규모 공사현장에서는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특히 가연물이 많고 공간이 폐쇄된 인테리어 공사에서 용접으로 인한 화재가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방화시설

이날 지하 1층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는 무서운 속도로 지상 3층까지 번졌다. 용접 작업을 한 당사자들은 재빨리 탈출해 목숨을 건졌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이들이 지상 1층과 2층에서 발견된 것은 유독가스의 속도가 그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소방방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독가스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속도는 초당 3~4m로, 수평 확산 속도(1~3m)보다 빠르다. 건물 구조와 대피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지하 1층에서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피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날 지상 2층 화장실 등에서 발견된 사망자들은 지하 1층이나 지상 1층에 있다 급속히 퍼지는 연기와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위로 올라갔으나 출구를 찾지 못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법상 연면적 1,000㎡가 넘는 지상 3층 이상 건물은 각층마다 방화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사고 현장에서는 시공사가 공사 편의를 위해 무단으로 방화셔터 등 방화 시설이 작동되지 않도록 차단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상 2층에 있던 일부 시민들은 “사이렌이 울렸고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고 전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상층 방화시설도 지하의 유독가스가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여기에 연기를 외부로 빼내기 위해 다중이용시설 지하층과 무창층에 설치해야 하는 제연 설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유독가스는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 통로를 따라 순식간에 건물 내부를 가득 채웠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화시설이 정상 작동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어떤 제연설비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제연설비는 전용설비를 쓰지 않고 냉난방공조시설과 겸용으로 사용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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