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의원선거 지각변동
“反이민”영국독립당 단독 1위 108년 노동-보수 양당 구도 깨
프랑스 국민전선도 압승 전망
反EU 그룹 교섭단체 유력 과반 없어 캐스팅보트 쥘 듯
유럽연합(EU) 의회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돌풍을 일으켰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고, 독일에서도 약진했다. 극우와 마찬가지로 반EU 정책을 표방하는 극좌 정당도 그리스 등 일부 국가에서 선전함에 따라 유럽의회 내에서 반EU 정치그룹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ㆍ프랑스 극우파 사상 첫 승리 유력
극우 정당 돌풍이 가장 거셌던 나라는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권을 달렸던 영국과 프랑스였다. 양국 극우 정당인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과 프랑스의 국민전선(NF)은 자국 전국 규모 선거에서 사상 첫 승리를 눈앞에 뒀다.
영국독립당(UKIP)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를 108년 만에 깼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개표율이 34.2% 완료된 가운데 반이민 및 반EU 정책을 내세운 독립당이 득표율 27.5%를 기록해 집권 노동당(25.4%)과 거대 야당인 보수당(23.9%)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영국에 배정된 의석 73개 중 독립당은 23석, 보수당과 노동당은 각각 18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독립당은 영국 총선에서 아직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군소 정당으로, 제3의 정당이 전국 규모 선거에서 1위에 오른 것은 1906년 자유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후 처음이다. 영국 언론들도 ‘역사적 승리’(가디언), ‘정계 지각변동’(BBC) 등의 수사를 동원하며 대이변을 보도했다. 2009년 선거에서는 보수당 27.7%, 독립당 16.5%, 노동당 15.7%를 득표했었다. 나이젤 파라지 독립당 대표는 “군소정당이 전국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영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현실화 했다”며 “유권자들이 지난 100년간 보여주지 못했던 가장 놀라운 결과를 내가 이끌어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NF)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에서 국민전선은 약 25%의 득표율로 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20~21%),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 사회당(14~15%)을 누르고 1위에 오를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6%)의 4배에 달하는 수치로, 역대 선거에서 거둔 최고 득표율이다. 국민전선은 프랑스에 배정된 유럽의회 의원 74개 의석 중 가장 많은 23~2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국민전선이 1위를 차지할 경우 1972년 창당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처음 승리하게 된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 싶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집권 사회당이 국민에게 거부당한 만큼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ㆍ그리스에서도 반EU 정당 선전
EU를 이끄는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 연합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공영 ARD 방송과 ZDF 방송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민ㆍ기사당 연합은 2009년 득표율(37.9%)에 조금 못 미치는 36%, 기민ㆍ기사당과 연립정부를 운영하는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DP)이 27.5%로 나타났다. 유로화 통용을 반대해온 신생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6.5%의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원내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EU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에서는 EU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개표가 40% 진행된 상황에서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26.4%를 얻어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신민당(ND)에 3.2%포인트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당수가 범죄집단 조직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는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이 9.37%로 3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관심을 모았던 극우파 자유당(PVV)이 예상 밖의 부진을 나타냈다. 출구조사 결과 자유당은 친EU 중도 정당인 ‘민주66’과 기독민주당(CDA), 집권 연정에 참여한 자유민주당(VVD)에 이어 4위에 그쳤다.
반EU 정치그룹 제3세력 부상
유럽의회 사무국이 출구조사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전체 의석(751석) 중 중도우파 유럽국민당그룹(EPP)이 212석, 중도좌파 사회당그룹(PES)이 185석으로 1, 2위로 예측됐다. 반EU 그룹은 129석을 차지해 그 뒤를 이었다. 유럽의회 양대 정파인 EPP와 PES에 미치지 못하지만, 교섭단체조차 구성하지 못했던 지난 선거에 비해 상당히 선전해 제3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반EU 및 반유로화 정서 확산에 힘입어 선전한 극우ㆍ극좌 정당이 유럽의회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정치지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이들은 반EU를 대표하는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강유덕 대외정책연구원 유럽팀 팀장은 “결의안 등 유럽 공동의 입장을 나타내거나 중요한 사안을 다룰 때 이들이 거부권(veto)을 행사할 경우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 EU그룹이 유럽의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고춧가루를 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어느 정치그룹도 과반(386석)을 차지하지 못함에 따라 1, 2위가 유력한 국민당그룹이나 사회당그룹이 다른 정치그룹과 연합세력을 구축할 때 이들이 오히려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유럽의회 내 정파 구성을 위한 각국 정당간 비공식 접촉에서도 다른 정치그룹에 협조하는 대신 일정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반EU 정당 간에 견해 차이가 커서 교섭단체 구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예컨대 영국독립당은 반이민 정서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민전선, 네덜란드 자유당과 연대할 뜻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교섭단체를 꾸리려면 최소 7개국에서 25명 이상의 의원이 동참해야 한다.
새 EU 지도부 11월 시작
유럽 정치일정도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유럽의회는 6월 중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7대 의회에서는 각국의 160개 정당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7개 정치그룹을 형성했다. 7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제8대 유럽의회 첫 번째 회기에서는 의장이 선출된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각국 정상들은 27일부터 비공식으로 만나 차기 집행위원장 선출을 논의한다. 유럽이사회가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차기 집행위원장을 지명하면 7월 중순 본회의에서 지명자 신임 투표를 거쳐 과반을 얻을 경우 승인된다. 부결되면 다시 후보자를 지명한다. EU 정상들은 또 임기가 만료되는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후임 인선 작업도 진행한다. 새 EU 지도부는 11월 1일 취임해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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