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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청소년의 권리

입력
2014.05.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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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 하나가 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의 공통점은, 학생들과 그 단체활동을 상대로 장사해 사는 업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업자들은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무책임하게 장사하며 더 손쉽게 돈을 벌어왔을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와 업자라는 ‘어른’들만 믿고 안전을 저당 잡힌 돈벌이의 객체였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학생들은 목숨이 걸린 상황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제대로 된 정보도 듣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만 듣다 희생됐다. ‘가만히 있으라’는 권위주의는 ‘(어린) 니들은 몰라도 된다’는 무시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나쁜 업자들만 가진 관점이나 의식이 아니다. 가장 평범한 학교나 가정에서도 그런 관점은 언제나 작동한다. 청소년들이 그저 ‘몰라도 되고’ 보호만 받아야 할 어리고 미숙한 존재이고, 따라서 정책과 정보의 객체일 뿐이라는 관점은 상식으로 통용된다. 단원고 학생들을 ‘아이’라고 부르며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의 슬픔과 죄의식 속에도 혹 그런 의식이 은연중에 끼어 있지 않은지?

참극을 겪은 우리는 이제 ‘말 잘 듣는 사람보다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문화로 바꾸자’고 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기도 한다. 다 옳은 말이다. 굴종을 요구하는 문화에 맞서야 하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과연 어떻게? 토론 수업을 더 도입할까?

청소년들은 이미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이며,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과 입시몰입 교육과, 또 잘못된 정치가 그들이 그런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감추고 있는 것 아닌가? 청소년들이 세월호에서처럼 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인권과 사회권을 누리게 해야 한다면 첩경이 있다. 그들을 ‘인간’으로 즉, ‘아이’가 아니라 책임 있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접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확실한 장치도 있다.

바로 선거권 제한연령을 낮추어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선거권을 18세 혹은 그 이하로 낮춰야 한다. 피선거권의 연령제한도 낮춰야 한다. 이 방법의 정치ㆍ사회적 효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무권리 상태와 노동현장에서의 착취를 해결할 계기가 될 것이며, 그들은 스스로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는 초고령화가 진행중인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병든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미래를 살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맞추어 ‘(부자) 노인을 위한 나라’를 ‘모두를 위한 나라’로 바꿔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수백 명의 청소년이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 때문에 물속에 잠겨 있던 지난 4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청소년들은 계속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판결 하나를 했다. 18세 청소년은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ㆍ신체적 자율성 충분치 않다”며 선거권ㆍ선거운동ㆍ정당가입 제한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냈다. 판결이 죽음의 명령인 ‘가만히 있으라’와 똑같지는 않다고 해도, 보수적인 기득권층의 생각을 대변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 232개국 중 215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개국이 18세를 선거권 행사 연령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의 지력이나 판단력이 세계 꼴찌 수준인가? 세월호 참사는 청소년 권리 후진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권과 정치적 권리는 함께 커간다. 다시 18세, 아니 17세 선거권을 주장한다. 미래의 한국을 위해 이 땅에서 오래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주자. 헌재와 여야는 기득권세력과 노인들 뒤에 숨지 말고, 젊은이들 앞에 당당히 서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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