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새누리당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 결과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친박계의 분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비주류인 정의화 의원이 친박계 핵심 그룹의 지원설이 나온 황우여 전 대표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같은 결과는 당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친박계의 표가 상당수 이탈했다는 분석을 빼고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19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친박계가 박근혜정부 집권 2년 차 만에 분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분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이명박정부 당시 한나라당(옛 새누리당) 주류였던 친이계와 비교하면 좀 더 뚜렷해진다. 18대 국회에서 친이계 분화의 서곡은 이명박정부 집권 3년차에서야 울리기 시작했다. 2010년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을 중심으로 한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정두언 의원 등에 대한 사찰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본격적인 당내 의원들의 표심으로 드러난 시점은 집권 4년 차인 2011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계가 지원하던 안경률 의원을 제치고 중립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당선됐을 때다.
친박계의 빨라진 분화 움직임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한 비주류 재선 의원은 “당초 친박계라는 계파 자체가 구심력이나 결집력이 약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 순간 와해 수준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즉 당내 뚜렷한 견제 세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박계 분화가 빨라지는 조짐은 결국 구성원들의 특징이나 문화 등 계파 내부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의원들이 친박계 초ㆍ재선 의원들과 교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히는 서청원 의원이나 이완구 원내대표 모두 재보선을 통해 입성한 만큼 친박계 다수를 이루는 초재선 의원들을 하나로 결집할 공감대를 아직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서 의원이나 이 원내대표 모두 국회 공백 기간이 있었던 만큼 의원들과 스킨십에 아직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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