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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랍의 봄’ 3년 만에… 군부통치 회귀? 민주적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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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랍의 봄’ 3년 만에… 군부통치 회귀? 민주적 쿠데타?

입력
2014.05.2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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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선 ‘군실세 엘시시’유력

파라오 헌법·경제난에 발목 잡힌

친무르시 무슬림형제단 와해 위기

돈 줄 장악한 군 제건에 올인

미국도 ‘엘시시 대세론’안도감

이집트가 26~27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압델 파타 엘시시(60) 전 국방장관의 당선이 확정적인 이번 선거로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시위로 촉발된 이집트의 정치적 변동이 일단락될 전망이다. 이 매듭을 두고 한편에선 ‘군부통치로의 회귀’, 다른 한편에선 ‘민주적인 쿠데타’라는 엇갈린 평가가 상존한다. 이는 민주화 염원 속에 정권을 잡았다가 1년 만에 반정부시위를 등에 업은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린 이집트 이슬람 정권에 대한 상반된 평가와도 겹친다. 중동 최대 인구대국이자 정치·문화 중심지인 이집트의 정치적 변동은 함께 아랍의 봄을 맞았던 10여개국의 향후 정국은 물론, 첨예한 외교 및 분쟁의 장인 아랍사회의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년 만에 막 내린 ‘무슬림 천하’

지난해 7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주도하고 실권을 장악한 엘시시는 이번 대선에서 오랜 반정부운동 경력을 지닌 함딘 사바히(60)와 대결한다. 엘시시와 동갑내기인 사바히는 안와르 사다트(1970~81년 집권)와 호스니 무바라크(1981~2011)로 이어진 군부독재 시절 17차례나 투옥됐던 유명 반정부 인사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본격적인 군부통치 시대를 연 가말 압델 나세르(1954~1970)를 추종하는 ‘나세르주의자’로서 반미(反美) 민족주의를 표방한다. 무바라크 축출 직후 실권을 장악한 군최고위원회(SCA)에 반대하는 등 아랍의 봄 수호자 역할을 했던 그는 무르시 당선 이후엔 강경한 정부 비판론자로 돌아섰다. 군 쿠데타를 지지하지만 권력은 민간정부에 이양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젊은 지식인층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엘시시로 기운 상태다. 그가 대선 출마를 위해 3월 공직을 사퇴한 직후 39%(이집트 여론조사기관 바시라)였던 지지율은 같은 기관의 4월 조사에서 72%, 이달엔 76%로 급상승했다. 반면 사바히의 지지율은 1~2%대에 머물러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엘시시 지지세력은 군부는 물론이고 700만명 규모의 공무원, 다수가 언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가, 무슬림정권을 두려워하는 소수파 그룹, 무엇보다 3년 간 이어진 정치적 혼란에 지쳐 강력한 통치자를 원하는 시민들”이라고 논평했다. 엘시시도 대세론에 편승해 ‘조용한’ 선거운동을 치르고 있다. 사바히와의 공개토론을 삼가는 것은 물론이고 신변상 위협을 언급하며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달에야 방송 합동 인터뷰를 가진 그는 구체적 공약 발표 대신 경제난을 강조하고 모성과 국가, 군에 대한 감성적 숭배를 전달하는데 치중했다.

중동 최대 맹방 이집트의 군 쿠데타를 인정하지도, 적극 비난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온 미국도 엘시시 대세론에 안도하는 눈치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이집트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해 7월 3일부터 그해 연말까지 엘시시와 25번 넘게 통화하며 관계 강화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엘시시도 “무르시 축출로 대미관계가 한때 소원했지만 이번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국민적 여망이었음이 확인되면 양국 관계가 다시 개선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반면 군부정권 60년 동안 불법단체로 낙인찍혔다가 무르시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던 무슬림형제단은 1년 만에 실권하고 군부의 탄압으로 와해 위기에 몰렸다. 쿠데타 한 달 반 만에 반군부시위 참가자 600여명이 숨졌고, 군부와 가까운 사법부는 올 3월 529명, 지난달 683명의 무르시 지지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사형선고 명단에 무함마드 바디에 의장 등 무슬림형제단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무르시 또한 살인교사 혐의 등으로 두 건의 재판에 계류 중이다.

군부독재 회귀? 민주적 쿠데타?

2011년 초 무바라크 정권 축출을 위해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은 2년 반이 지나 고스란히 무르시 하야를 외치며 같은 광장에 모여들었다. 2011년엔 시민들이 무서워 감히 나설 수 없었던 무바라크 지지세력까지 동참한 것이 두 시위의 유일한 차이랄까. 마흐무드 바드르(29) 등 청년 5명이 결성한 반정부조직 ‘타마로드(반란)’에는 무바라크 축출을 주도했던 ‘4월 6일 청년운동’을 포함한 이집트 내 자유주의 및 세속주의 세력이 총결집했고 이들이 주도한 무르시 하야 서명에는 국민 4명 중 한 명꼴인 2,200만명이 동참했다. 무르시 정권 붕괴를 순전히 군부의 야욕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현지에선 “쿠데타는 쿠데타이나 민주적인 쿠데타”라는 평가가 공공연하다.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로 이어진 군부 장기독재를 청산하는 시민혁명의 결실이었던 무르시 정권이 맥없이 무너진 이유를 따져보는 것은 향후 이집트 정국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국 정치학자 로라 란돌트와 폴 쿠비체크는 지난해 공동발표한 논문에서 이집트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불신을 과거 회귀의 근본적 이유로 꼽았다. 무바라크 사임 직후 군 고위급으로 구성된 SCAF가 실권을 장악했을 당시 무슬림형제단은 이에 반대하는 세속주의 세력을 제치고 군부와 손을 잡았다. 양 진영은 각자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며 임시헌법 제정을 주도했다. 예컨대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을 국교로 규정하고 샤리아(이슬람율법) 적용을 공식화하는 한편 대통령의 슈라위원회(상원) 의원 임명권을 확보하는 대신 국방장관 및 다수의 주지사 직을 장교에게 배당하겠다는 군부의 요구를 수용했다. 무르시 집권 이후 반정부 여론이 고조됐을 때 비(非)이슬람 세력이 지체 없이 군부와 결탁한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에 눈감는 비인간적 처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집트 시민세력의 반목은 아랍의 봄을 통해 무슬림형제단 정파가 권력을 잡았지만 자유주의ㆍ세속주의 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결국 민주헌법 제정에 성공한 튀지니와 확연히 비교된다.

이슬람주의를 앞세운 무르시 정부의 권위주의도 혁명 실패의 주요 요인이다. 2012년 11월 ‘사법부를 비롯한 누구도 대통령 훈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파라오 헌법’이라는 비아냥을 샀던 헌법선언문을 발표한 무르시는 자유주의 및 기독교계 의원이 불참한 제헌의회를 통해 ‘샤리아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새 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아랍의 봄 이후 치러진 세 번의 선거(대통령 및 상하원)와 두 번의 국민투표에서 모두 승리했던 무슬림형제단의 자신감은 결국 자멸로 가는 강공책을 불렀다.

아랍의 봄의 본질이 애초 정치적 변혁이 아닌 경제난 타개 요구였다고 보는 이들은 군부가 이집트 경제를 장악한 세력이란 사실을 주목한다. 이집트군은 국민총생산(GDP)의 최대 40%로 추정되는 사업체 및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주요 지방 도지사 및 토지개발공사 사장직을 꿰차고 지역경제를 좌우한다. 46만명의 군인을 포함한 국민 다수의 일자리를 군이 책임지고 있는 구조다. 미국이 1987년 이래 매년 제공하는 연 13억달러(1조3,330억원) 규모의 군사원조는 누구도 용처를 모르는 군의 쌈짓돈이다. 반면 첫 민간정부인 무르시 정권에서 국민들은 경제난 해소는커녕 48억달러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고강도 긴축정책과 맞닥뜨려야 했다. 군부 또한 의회를 통해 군 예산 심의 및 감사를 강화하려는 무르시 정부의 개혁정책에 경계심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시시, 제2의 나세르 될까

지난 19일 이집트 안렉산드리아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무슬림형제단의 한 지지자가 쇠창살에 갇혀 판결 내용을 듣고 있다. 법원은 이날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에게 살인과 폭력, 폭동 등의 혐의로 종신형 또는 사형을 선고했다. 알렉산드리아=AP 연합뉴스
지난 19일 이집트 안렉산드리아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무슬림형제단의 한 지지자가 쇠창살에 갇혀 판결 내용을 듣고 있다. 법원은 이날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에게 살인과 폭력, 폭동 등의 혐의로 종신형 또는 사형을 선고했다. 알렉산드리아=AP 연합뉴스

“나세르 이후 가장 인기 있는 군인 정치가”로 평가받는 엘시시의 집권으로 이집트 정국은 한결 안정화될 전망이다. 군부 정권이긴 하나 명목상으로는 시민과 자유주의ㆍ세속주의 정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협치(協治)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핵문제 해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 등 중동에서 난제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은 안정을 되찾은 ‘맹방’에게 다각도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엘시시는 당분간 군 주도의 경제재건에 집중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이달 TV인터뷰에서 신공항 8곳 건설, 광산 23곳 개발 등 1조 이집트파운드(140조원) 규모의 개발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군이 개발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민간업자를 지도할 것”이라며 “군이 명령에 따라 명령에 따라 기능적으로 작동하듯 국민들도 인내심을 갖고 의무를 이행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엘시시의 강력한 적수는 역시 무슬림형제단이다. 군부 외에 대안적 정치세력이 없던 이집트에서 빈민구제, 자선병원 운영, 문맹퇴치 활동 등 ‘풀뿌리 운동’을 통해 기층세력의 지지를 다져온 데다가 무슬림형제단 자체가 범아랍적 네트워크를 갖춘 조직이다. 지난 60년의 군부독재 기간 동안 지하세력으로 생존해온 저력도 있다. 엘시시 정권의 탄압이 지속될 경우 기존의 온건 성향을 벗고 시나이반도에서 암약하는 이슬람 무장세력과 결탁할 가능성도 있다.

아랍의 봄을 통해 각성한 시민들도 군부정권을 적극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엘시시가 무슬림 세력 숙청에 헙력했던 세속주의 정파를 토사구팽한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의 전철을 따르려 한다면 큰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군부 정권이 벌써부터 사법부 통제를 강화하고 과도한 처벌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달 22일 퓨리서치센터는 엘시시에 대한 지지율이 54%로 눈에 띄게 떨어진 반면 무르시에 대한 호의적 견해가 42%에 이르렀다는 의미심장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지 유명 블로거 마흐무드 살렘은 “엘시시가 성공하면야 좋겠지만, 실패한다면 이집트인들이 무슬림형제단에 이어 군부에 도전하는 진짜 혁명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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