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연주자들이 인정
현존하는 최고의 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참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을 찾는 것, 그것이 내 음악인생을 관통하는 과제이자 꾸준한 작곡 활동의 비결입니다.”
현대음악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불리는 러시아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83)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구바이둘리나는 슈니트케(1934~1998), 리게티(1923~2006) 등과 더불어 20, 21세기를 풍미한 현대음악 작곡가로,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안네 소피 무터,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은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23일 서울대 콘서트홀에서 만났다. 이날 ‘요한수난곡’(2000)을 비롯한 자신의 음악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스타일이나 테크닉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본질은 영원하다”며 “모든 창작자는 내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소련의 타타르스탄 공화국 출신으로 정치ㆍ사회ㆍ종교적 자유가 제한된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 음악은 편안한 유희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음악에는 굴곡 많은 역사를 통해 쌓인 내면의 종교적 영감이 담겨 있다. 구소련 당국이 원하는 사회주의에 부합하는 음악 대신 일찌감치 종교적 색채의 음악을 작곡하며 정치적 검열과 압박에 시달렸던 그는 “너의 ‘잘못된 길’을 계속 가라”는 스승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격려로 자신의 작품세계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1950년대 들었던 그 조언을 지금까지도 기억합니다.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압박에 시달렸던 이전 세대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의 이 말을 통해 나는 음악가로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6세 때 카잔에 있는 어린이 음악학교를 다니며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개발했다. 구소련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던 엔지니어 아버지와 이슬람 사제인 할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5살 때 처음 접한 피아노의 다양한 음향에 매료됐어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환경에서 장난감 하나 없이 자라야 했던 내게 피아노는 신전과 같은 존재였죠.”
그는 현대음악의 대모로서 “작곡가들이 형식과 재료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음악이 듣기 불편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작곡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답했다. 그는 “훌륭한 20세기 음악이 많지만 어떤 음악은 재료에만 중점을 두고 전체 형태는 간과해 청중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 것 같다”며 “과거와 같은 정치적 독재가 아닌 돈의 독재라 할 만한 물질 지배 사회를 사는 젊은 세대 작곡가들은 오히려 예술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 기돈 크레머가 초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르토리움’으로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진 그는 92년 이후 독일에 거주하면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는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위촉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구상 중이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독주 악기처럼 다뤄 악기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야심에 찬 도전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지만 쾌락만 주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음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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