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항지식·법률·외국어까지…
최대 15년 걸려야 자격 취득
장기간 고립된 해상 생활 고려
징계·체포권 막강 권한에 인명구조·재선 등 의무도 막중
해운 불황에 처우 갈수록 열악 선장·선원의 자질 떨어뜨려
“선친과 제 뒤를 이어 선장이란 막중한 임무를 맡은 아들에게 선원으로서 꼭 지녀야 할 ‘뱃사람 정신’ 은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부산에서 선박 및 선원관리회사를 운영하는 양진국(64)씨는 지난달 16일 진도 해역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며 선친과 아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다고 했다. 해방 이후 10년 넘게 배를 탄 아버지와 그 뒤를 이어 1970~80년대 외항선을 탄 자신, 그리고 올해부터 한 대형 선사의 선장이 된 아들까지 ‘국내 첫 3대 선장’이란 타이틀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터라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며 더욱 참담하고 착잡했다고 했다.
양씨는 이번 사고에서 뱃사람 정신, 즉 ‘시맨십(Seamanship)’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친 바다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은 물론 위급 상황에서도 배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진짜 선원”이라고 강조했다.
선원 중의 최고 선원인 선장은 특히 그렇다. 큰 배냐 작은 배냐, 화물선이냐 어선이냐 여객선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까지 배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을 지켜야 할 자리가 바로 선장이기 때문이다.
선장은 항해와 선박 운용에 관한 모든 업무를 책임지고 선원들을 통솔하는 최고책임자. 회사로 치면 CEO이고, 군대로 치면 야전사령관이다. 선박의 구조, 항해 등 실제 운항과 관련한 지식부터 선원법 등 법률지식, 기초안전훈련 및 외국어까지 그야말로 전 분야를 섭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장이 되는 길은 쉽지 않다. 한 명의 선장이 탄생하려면 해사고(3년)ㆍ해양대(4년)→3등항해사(1~2년)→2등항해사(2~3년)→1등항해사(3~5년)까지 길게는 15년이 걸린다. 뱃사람으로선 마지막 단계, '선원의 꽃'인 셈이다. 물론 해양관련 고교나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건 아니고 밑바닥을 거쳐 선장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선장이 되려면 승선경력과 함께 각 직급에 맞는 면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해야 한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 외에 한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리더로서의 자세다. 재무나 영업사정에만 밝다고 좋은 CEO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전투경험이나 전술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최고의 사령관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선장에게도 책임감과 자기희생을 토대로 한 리더십이 필수다. 국내 최대연안여객선인 ‘씨스타크루즈호’의 김철수 선장은 “다른 배도 그렇지만 특히 여객선은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장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배 위에서 선장이 갖는 책임과 의무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운송수단과 달리 선박은 많은 선원들을 거느리고, 장기간 해상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비행기나 열차 등의 책임자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과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선원법'에는 선장에 대해 ▦규율을 어긴 선원을 처벌할 수 있는 징계권 ▦범죄 발생 시 수사와 체포가 가능한 사법경찰관으로서 직무 등 큰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반대로 ▦선박 충돌 시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조치의무 ▦승객 및 화물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배를 지켜야 하는 재선의무 등 책임 역시 중하게 두고 있다. 승선경력 12년의 한 선장은 “각종 돌발상황에서 권한을 발휘해 질서를 유지하려면 주어진 의무를 존중하고 수행하는 태도는 필수”라며 "이번 세월호 침몰 때 선장은 법상 명시된 인명구조의무와 배를 지켜야 하는 재선의무 등 기본적인 책무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장에 대한 처우는 경력에 따라, 또 배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선장들은 일반 봉급생활자보다는 높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외항선장의 경우, 연봉이 1억3,000만원 수준이다. 이어 1등항해사는 9,000만원, 2등항해사는 6,000만원, 3등항해사는 5,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 돈을 다 받진 못한다. 보통 1년 중 8개월 만 일하고 나머지는 휴가를 보내는 근로패턴을 감안하면 실제 급여는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수년 째 이어지는 해운경기 불황은 임금상승에 제동을 걸고 있다.
반면 중소 선사가 대부분인 내항선, 특히 연안여객선 선장의 연봉은 외항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은 정년 퇴임 후 월급 270만원의 계약직으로 재고용된 케이스인데, 연봉으로 환산하면 3,000만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한 연안여객선사 관계자는 “저가항공 등이 생겨 갈수록 수요가 줄며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선장들도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은 외항선을 선호해 내항선은 퇴직하거나 정년을 앞둔 노선장이 채우다시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열악한 처우가 선장과 선원들의 자질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악화되는 영업환경으로 인해, 연안 여객사들이 질과 자격이 떨어지는 저임금 선장과 선원들을 채용하게 되고 그렇다고 재교육도 없다 보니, 결국 기본적인 '시맨십'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력 25년의 한 선장은 “도서 등을 연결하는 유일한 수단인 연안여객은 열차나 버스처럼 공공 운송성격이 짙다"며 "처우와 환경개선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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