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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길거리 응원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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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길거리 응원 고민

입력
2014.05.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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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한강변 붉게 물들인 여의도 거리응원 모습. 류효진기자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한강변 붉게 물들인 여의도 거리응원 모습. 류효진기자

소설가 고 박완서씨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남편은 지병으로 숨졌지만 의대생이던 아들은 창졸 간에 사고로 곁을 떠났다. 그는 참척(慘慽)의 슬픔을 담은 글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올림픽에 열광하는 대중에 경멸을 토로했다.“오나가나 그 놈의 올림픽, 정말 미칠 것 같다…들뜬 야단법석이 싫다…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 월드컵을 앞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마음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정서를 감안, 월드컵 개막을 20여일 앞두고 길거리 응원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적 애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포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월드컵 공식 슬로건 ‘즐겨라 대한민국’을 바꿀 것을 요청하는 청원 글이 게시돼 열흘도 안돼 5,500여명이 서명했다. 네티즌들은 ‘슬퍼하라 대한민국’‘정신차리자 대한민국’‘잊지 말자 대한민국’같은 슬로건을 제안하고 있다.

▦ 월드컵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다. 세월호의 아픔을 딛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길거리 응원은 재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붉은악마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길거리 응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거리응원 단골 장소인 서울광장 활용 여부를 두고 서울시도 고민했으나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있어 실종자 수색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 2002년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의 마지막 관문인 포르투갈 전을 하루 앞두고 효순과 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희생됐다. 언론은 이 엄청난 사건을 외면하고 온통 월드컵 기사로 도배했다. 한참 후에야 시민사회에 알려져 촛불시위로 타올랐으나 뒤늦은 여론의 관심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월드컵에 가려져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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