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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천재 벌목공이 황금나무 베어 버린 속뜻은?

입력
2014.05.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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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문비나무> 존 베일런트 지음ㆍ박현주 옮김, 검둥소 발행
<황금가문비나무> 존 베일런트 지음ㆍ박현주 옮김, 검둥소 발행

이 책은 1997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퀸샬럿제도에서 일어난 어떤 나무의 살해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가 살던 숲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보자.

캐나다 서북쪽 연안에 지상에서 가장 키가 큰 침엽수로 이뤄진 숲이 ‘있다’. 비옥한 흙과 풍부한 강수량, 그리고 19세기까지 이른바 문명세계로부터 온 파괴자들의 발이 닿지 않을 수 있었던 깊숙한 위치는, 이곳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가 밀생하는 온대 우림으로 남게 했다. 연필향나무, 아메리카삼나무, 세쿼이아, 사탕소나무, 솔송나무, 미송, 미국 전나무, 검은 미루나무, 시트카 가문비나무…. 지상에서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생명체인 거수들과 그 생명체에 의지해 살아가는 억겁의 생명으로 이곳은 아직 원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숲은 20세기 초에 비한다면 미미하다고 해야 할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벌목시대의 초창기 빛 바랜 흑백 사진 속 숲의 나무들은 지름이 족히 4m에 높이는 100m 가까이 된다. 그래서 도끼를 든 난장이 같은 흑백 벌목꾼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밑동은, 그게 나무의 둥치라는 설명이 없으면 수풀에 묻힌 신전의 두리 기둥처럼 보인다. 그러한 나무로 이뤄진 숲이 폭 80㎞, 코르디예라 산계를 따라 수천 ㎞나 뻗어 ‘있었다’.

그러나 뒤이은 파괴의 폭과 속도는 지난 세기 지구 구석구석을 폐허로 만든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논픽션인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숲의 벌목꾼이었다. 그랜트 해드윈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벌목이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진행되던 1980년대 이름을 떨쳤던, 이를테면 천재 벌목꾼이었다. 싹쓸이 벌채의 최전선에서 그가 스스로를 영웅으로 느꼈는지, 아니면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뉴스의 중심이 되고 곧이어 영영 사라져 버린 뒤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그의 내면은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희미하게 재구성된다. 흐릿한 안개 너머 보이는 이 남자의 가슴엔 가문비나무숲의 어둠처럼 깊은 그늘이 있고, 문명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원시가 남아 있다.

“그가 혼자서 해냈던 작업량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가 제출한 계획들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는 뭔가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오지에 그냥 머물러 있곤 했는데, 시내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어요.”“더 좋은 학교도 있고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더 많았지만, 그곳은 그랜트에게 끔찍한 곳이었다. 수전 시마르드는 이렇게 썼다. ‘칼룸스로 그를 옮겨 놓은 것은 곰을 데리고 가 동물원에 집어넣은 것과 같았다.’”(146~149쪽)

이쯤에서 그랜트가 죽인 나무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황금가문비나무다. 가슴에 숲을 품고 있던 벌목꾼 그랜트는 결국 나무보호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약탈적인 벌목을 멈추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잎이 황금빛으로 빛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나무를 베어 버린 것이다. 황금가문비나무를 둘러싼 알량한 ‘보호’가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벌목을 은폐하고 있는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 나무는 잘려나가고 있는 다른 나무와 전혀 다를 것 없는, 단지 잎 색깔이 돌연변이일 뿐”이라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그랜트는 지금까지 긍정보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비양심적 벌목은 커다란 이슈가 됐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그 대가로 지불했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논픽션인데 스릴러의 재미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이런 주제의 책이 고혹적인 독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드문 작품. 사족을 붙이자면 먼지 쌓인 책장에서 이 책을 지금 꺼내든 이유는 비슷한 류의 논픽션이, 어떤 충격도 매혹도 없이 내 땅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가리왕산에 남한에서 가장 키가 큰 활엽수들이 사는 숲이, 아마도 곧 ‘있었다’고 하게 되겠지만, 아직 ‘있다’. 기껏 열흘의 스포츠 대회를 위해 그 숲은 과거가 된다. 천년 아름드리 고목에 벌채 표식을 달고 있을,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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