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인간은 다들 우습게 보지만, 사실 도구로 존재하는 것들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모른다.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해주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어도 불평하지 않으니 말이다. 인간이라면 거의 성자 수준의 인격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물에 감사하며 최대한 아껴 사용하고 낡은 걸 고치고 되살려내는 이들에 경의 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우정’이라고 불러 마땅한 이런 태도와 아주 다른 이유에서 사물들을 ‘오래’ 사용하려는 이들이 있다. 좀 더 값싼 비용으로 돈을 벌기 위해 수명이 다한 것을 헐값에 사들여 무리하게 사용하는 이들, 그럴 수 있도록 법적인 ‘내구연한’을 늘려 주는 이들, 이미 매우 낡아서 고장의 위험이 있지만 ‘전문적 지식’을 빌려 사고의 위험성이 별로 없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그렇다.
세월호가 바로 그랬다. 이명박 정부가 선박의 내구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준 덕분에, 노후선박의 수입이 급증하여 현재는 여객선의 선령이 평균 20.7년이라고 한다. 세월호, 18년 된 배를 수입하여 올해 20세가 된 배였다. 이는 지금 배들이, 적어도 기계적으로는 세월호 같은 사고의 위험에 평균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바로 그 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유난히 불길하게 느껴진다. 그 원전은 예정된 수명이 다했지만, 10년을 연장하여 현재 36년째 가동 중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이다. 이미 120여 차례 고장 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이른바 ‘원전마피아’가 수많은 규격미달의 부품을 끼워 넣은 게 들통 나 이미 몇 사람 구속된 사실도 있다. 부당한 수명연장에 의한 기계적 노화와 부패를 동반한 안이한 관리체제, 바로 이게 세월호를 바닷속에 가라앉게 만들었고, 구조작업마저 무효화시켰던 것들 아니었던가!
이에 비하면, 며칠 뒤 발생한 지하철 충돌사고는 차라리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해관계에 얽힌 ‘마피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비리가 개제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으로 그런 비리가 없어도, 내구연한 자체를 없애버려 살아남은 차량의 노후성에 신호관리 등에서 발생한 작은 실수만 더해져도 ‘지하철 충돌’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호 침몰의 시간에 진행된 고리 원전의 수명연장은, 세월호 다음은 원전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상상을 하게 한다. 물론 한국에서 원전의 안전성을 강변하는 말들을 익히 들어왔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체 어떤 사고가 예상한 곳에서 벌어진단 말인가! 후쿠시마의 원전관리자들 역시 우려와 비판을 일축하는 많은 말들을 반복해오지 않았던가? 체르노빌은 지진이나 쓰나미 없이도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낡은 기계와 부실한 관리에 비리로 얽힌 조직이나 인간관계가 추가된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할 것이다. 거기에 자연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약간의 요인들이 추가된다면, 우리가 최근 연이어 보고 있는 대대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불길한 상상력은 이제 그다음 장면마저 상상하게 한다. 방사능마저 차단한다는 청와대 지하의 벙커에서 각료를 모아놓고서, 원전 사고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책임을 묻겠다고 급하게 일갈하고, 원전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해체하고 관계자를 구속하겠으며, 관련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고 선언하는 단호한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물을 흘리며 사고로 죽은 이와 유가족, 그리고 방사능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 같다. 모두 진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사고처럼 어떤 사고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인 경우, 그 모든 단호한 대책이나 진심 어린 사과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생각하면, 기계에 대한 우정이 소중하다 생각하지만, 저 낡은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경제학적 용기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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