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가지 세제 혜택 중 24가지 사라지는 등
중견기업 되는 순간 각종 지원 줄어들어
중기->중견->대기업 '성장 사다리' 흔들
부산에서 공장자동화 센서를 제조하는 A기업은 지난해 자기자본이 1,000억원을 넘어서며 중견기업이 됐다. 매출이 크게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부채를 줄여나간 탓에 중소기업을 졸업한 것이다. 하지만 중견기업으로 분류된 후 세부담이 곧바로 20% 이상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빚을 줄인 게 오히려 독이 됐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성장해 중견기업이 되고, 중견기업이 성장해 대기업이 되도록 한다는 이른바 '성장사다리'를 복원하자는 게 현 정부의 핵심 기업정책. 이를 위해 제도적 지원책도 만들었고, 중견기업을 위한 정부조직도 확대 개편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커가기 보다는, 그냥 중소기업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중소기업 때 누리던 혜택들이 사라지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성장을 거부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2011∼2013년 중소기업을 졸업한 239개 업체를 대상으로 ‘중소기업 졸업기업의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졸업 후 단점이 더 크다’는 응답이 57.4%로 ‘장점이 크다’(9.9%)는 응답을 크게 앞질렀다. 중견기업 10곳 중 6곳은 중소기업 졸업을 후회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상은 1년 전 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조사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당시 조사에서는 ▦중견기업 진입 후 5년 미만 기업의 23.9% ▦매출 1,500억원 이상 중소기업의 26.7%가 중소기업으로 회귀 또는 유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제조업 기준)이 상시 근로자수 300명 이상, 자본금 80억원 초과 또는 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이 되면 중견기업으로 분류된다.
응답기업들은 중소기업 졸업 시 단점으로 ‘세제지원 축소’(77.0%)를 가장 많이 꼽았고, ‘정책자금 지원 축소’(12.6%)와 ‘인력지원 축소’(4.9%) 등을 지적했다.
때문에 중견기업들은 세제지원의 범위와 기준을 현행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견련 관계자는 “현재 생산성향상 시설에 투자를 할 경우 중소기업에게 주어지던 7%의 세액공제 혜택이 졸업과 동시에 3%로 줄어든다”며 “이 밖에도 기술취득금액에 따른 세액공제, 창업기업 등록ㆍ지방세 면제 등은 중소기업 졸업 후 아예 사라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누리던 34가지 세제지원 가운데 24개는 졸업 후 아예 사라지고, 나머지도 혜택이 축소되고 있다.
또 ▦신용보증의 경우 중소기업을 우선 보증해주는 반면 중견기업은 혜택이 전혀 없고 ▦국무총리실의 ‘외국인 인력정책 위원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중소기업에만 할당하는 등 자금지원과 인력수급 면에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급작스러운 혜택축소는 매출액증가율 감소로 이어졌다. 졸업 직전 3년 평균 16.2%였던 매출액증가율은 졸업 후 3년 평균 2.7%로 하락했다. 고용증가율 역시 졸업 전 7.1%에서 졸업 후 평균 6.2%로 소폭 하락했다.
이 같은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는 ▦R&D 세액공제율(8%)을 3년 평균 5,000억원 미만 기업에까지 적용 ▦연 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은 중기간 경쟁시장 참여 제한적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중견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정책’을 마련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소기업 졸업으로 겪는 애로는 세제ㆍ정책자금 지원축소와 같이 실질적이고 단기적인 반면 장점은 기업위상 제고 등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이득에 그쳐, 기업성장을 위한 유인책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9.4년으로 조사됐다. 이중 수출위주 기업들은 평균 17.8년, 내수위주 기업들은 평균 20.3년이 소요됐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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