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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이 버려진 곳... 순례자들엔 복음의 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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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이 버려진 곳... 순례자들엔 복음의 門"

입력
2014.05.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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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몇 달 남기지 않은 한정관 신당동 주임 신부는 “광희문 성지의 현양으로 사목활동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더 없이 영광스럽다”고 했다.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정년을 몇 달 남기지 않은 한정관 신당동 주임 신부는 “광희문 성지의 현양으로 사목활동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더 없이 영광스럽다”고 했다.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천주교 박해 비극의 현장... 수많은 교우들 매장

39년만에 일반에 개방 "당시 원형 고스란히 보존, 성스러운 정신 계승 기대... 9월 현양관ㆍ기념비 건립"

서울 중구 광희2동에 있는 광희문(光熙門)은 1456년경 세워진 성문이다. 서울 4소문 가운데 하나인 남소문(南小門)의 다른 이름이다.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위치한 광희문은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 그래서 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軀門)이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문루가 철거되고 도로 개설을 위해 성벽 일부가 철거되면서 육축만 남아 있었다. 방치되던 서울 성곽이 1963년 사적 제10호로 지정되면서 1975년 광희문 문루와 주변 정비 공사가 이뤄졌다. 철책으로 폐쇄돼 있던 광희문이 최근 39년 만에 일반인에게 연중 무휴 24시간 개방됐다.

광희문은 천주교 박해 역사와 떼놓을 수 없는 곳이어서 천주교는 이 일대를 광희문 성지로 지정했다. 조선 말 천주교 박해 당시 포도청이나 의금부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거나 옥사한 가톨릭 신자들의 시신이 버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시신도 광희문 밖에 내버려졌다.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성녀 김임이, 성녀 이간란, 성녀 정철염, 우술임 등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방치돼 있었다. 가족이 시신을 찾아가지 않으면 순교자들은 광희문 근처에 매장됐다.

가톨릭 서울대교구에 소속돼 있는 광희문 성지는 신당동 성당이 관리를 맡고 있다. 광희문 앞에서 만난 한정관(69) 신당동 주임 신부는 “올해로 정년인데 광희문 성지를 현양하는 일로 사목 활동을 마무리하게 돼 더없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서소문 성지, 당고개 성지 등 다른 순교 사적지는 대부분 원형이 완전히 파괴돼 후세 사람들이 세운 조형물로만 채워져 있지만 광희문 성지는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광희문은 조선 말 천주교 박해 당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체포된 가톨릭 교우들이 한양으로 이송돼 들어올 때 거쳐야 했던 문이었고 수많은 순교자가 이곳에 내버려져 근처에 매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희문 근처는 교우들이 좌ㆍ우 포도청에서 치도곤, 태장, 주뢰 등 온갖 고문을 당하고 질병이나 교수형으로 죽게 되면 내버려지거나 묻힌 성스러운 장소”라고 설명했다.

순교자의 행적이 잊혀지는 게 안타깝다는 한 신부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성화된 땅에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념비와 순교현양관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광희문 앞에 순교현양관과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에는 모두 13억원이 들어간다. 한 신부는 “비록 26평 정도의 작은 규모지만 순교현양관이 9월에 건립되면 광희문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이 현장에서 간단한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중에 상황이 허락되면 사제가 상주하고 신자들에게 고해성사 미사 등을 집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신부는 “세월호 참사로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나눔을 실천했던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 받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면 더 없이 좋겠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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