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2시 30분쯤 서울 양천경찰서 형사과. 일용직 노동자 김모(51)씨가 30대 형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목이 졸린 듯 벌겋게 부어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저를 때린 게 아닙니다. 저 혼자 넘어져 다친 것이니 제발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3시간 전 공익근무요원인 김씨의 아들(21)은 3차에 걸쳐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친구와 함께 서울 신정동 집에 돌아왔다. 잠에서 깬 김씨가 “늦은 시간에 친구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꾸중하자 아들은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목을 졸린 채 구타를 당하던 김씨가 뺨을 때리자 아들은 오히려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부자가 신정2지구대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에도 아들의 패륜 행위는 계속됐다. 아들은 “골프채로 맞았다. 합의할 생각 없으니 꼭 처벌해 달라”며 김씨를 폭행하려다 제지를 당했다. “아버지에게 말 조심하라”고 타이르는 경찰관에게 “저 XX가 무슨 아버지냐. 돈을 제대로 벌어온 적도 없고, 엄마를 이용만 했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들이 진단서를 받아 오겠다며 경찰과 인근 병원으로 간 뒤 김씨는 엎드려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야 나이도 들고 전과가 아무리 많아도 괜찮지만 아들은 아직 어립니다. 절대 (전과가) 한 줄도 남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의 상처가 맞아서 생긴 것이 명백하다고 보고, 아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아들의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기소할 수 없는 단순 폭행과 달리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사법처리 해야 하는 존속상해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오죽하면 아버지가 젊은 형사 앞에 무릎을 꿇었겠나. 보는 우리도 안타까웠다”면서도 “폭행이 분명해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일 오전 11시쯤 술에서 깨 조사를 받던 아들은 아버지가 애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께 죄송하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골프채로 맞았다는 아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아들은 김씨의 벌이가 시원찮은데다 어머니와 이혼한 것에 불만을 품고 과거에도 김씨를 두세 번 폭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